수렵과 채집
□ 채집과 사유재산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수렵과 채집을 했던 구석기 시대는 신석기 시대보다 훨씬 풍족하고 풍부한 삶을 누렸다고 한다. `고대병리학(Paleopathology)`자들에 따르면 구석기인들은 한곳에 정착하며 농사를 지었던 신석기인들보다 평균키도 컸고 병도 적게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의 수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영양가 많은 과일은 사방에 널려 있었고,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속도에 맞춰 이동하며, 체력을 비축하고 동시에 체력을 키워나갔다.
구석기 시대처럼 수렵과 채집으로 생활하는 원시부족들은 수렵한 것을 공평하게 나누지만, 채집한 것을 나누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언뜻 들으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냥이 채집에 비해 더 어렵고, 더 많은 위험이 따른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채집한 것이 아니라 수렵한 것을 공동재산으로 생각했던 것일까? 사냥의 승패는 운에 달렸지만, 채집은 개인의 노력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채집의 성과물은 개인의 노력과 노동량에 비례한다. 그런 이유로 구석기인들은 자신의 노력과 노동이 들어간 채집물을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였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적 소유 혹은 사유 재산이라는 감각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각인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의 것에 대한 집착은 무의식적이고 자동적이다.
□ 한가한 산골의 도로와 고사리
산골 사람들은 봄이면 산나물을 채집한다. 참나물, 곰취, 고사리, 고비, 두릅, 방풍나물, 곤드레, 쑥, 냉이, 지장나물 등 그 종류를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다른 나물들은 거둬오자마자 생채, 숙채, 부침개로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고사리만은 그럴 수 없어서 삶은 후 바싹 말려 먹는다. 산골 마을의 봄은 할 일이 지천이어서, 정작 마을은 한산하다. 포장된 도로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가한 도로는 고사리로 빼곡하다. 어디까지가 누구의 것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고사리가 아닌 것에 손대는 법이 없다. 나의 것이 소중하듯 다른 사람의 것이 그러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배려의 역사 역시 소유욕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다. 해질 무렵, 밭에서 돌아온 산골 사람들은 고사리를 거두어들인다. 그때서야 동네 사람들은 눈짓으로 서로의 하루를 물으며, 서로의 고단함을 위로한다.
□ 바래지는 천초, 낯설면서 낯익은
구룡포에서 홀로 회를 먹고, 해안을 따라 호미곶을 찾아가는 길이다. 이곳은 따로 해안도로라는 것이 없어 네비게이션은 빠르고 큰 길만을 안내한다. 네비게이션을 애써 배신하고, 끊임없이 경로를 이탈하며 해안마을의 소로를 따라가고 있다. 한산한 도로의 한 쪽에는 검붉은 해초가 늦봄과 초여름 사이에서 말려지고 있다. 한 아주머니에게서 그것의 이름이 천초라는 것을 얻어 듣는다. 산골 촌놈은 그 풍경이 낯설면서도 낯익어 오래도록 바라본다. 우뭇가사리라고 불리는 천초는 햇볕에 하얗게 말려질 것이다. 이렇게 말려진 천초를 끓이면 풀어질 대로 풀어져 풀처럼 끈적끈적해지고, 이것을 체에 걸러 다시 굳히면 천초묵이 된다.
천초묵은 칼로리가 낮고 식이섬유가 많아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준다. 요즘에야 건강식품으로 불리지만, 옛날에는 그저 포만감만 주는 영양가 없는 음식에 지나지 않았다. 가혹한 시대의 백성들, 고기를 잡으면 먹지도 못한 채 공물로 바쳐야 했던 가난한 어촌의 사람들은 천초묵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을 것이다. 그네들은 자맥질로 어렵게 채집한 천초를 먹고, 그 영양으로 그보다 더 힘겨운 일을 감내하며 살아내야 했다.
우리가 웰빙이라고 부르는 대개의 음식들, 예컨대 고구마나 보리밥, 그리고 다시마, 톳과 같은 음식들은 이런 슬픈 역사와 관련이 있다. 그런 것들을 우리는 이제 비싼 돈을 주며 먹는다. 이러한 음식 속에는 지난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지만, 그 삶이 우리의 몸속에 스밀 시간 따위는 없다. 우리는 오직 장(臟)을 비우기 위해 이것들을 먹기 때문이다. 붉은 색을 띠는 천초가 햇볕에 하얗게 변색하듯 삶 역시 그 본래의 모습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하얗게 바래진다. 그리하여 낯익은 것은 낯설어지고, 낯선 것은 낯익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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