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순교할 수 있어도, 자식을 가지고 협박과 회유를 한다면 자신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창세 22, 1~2 등에는 아들 이사악의 생명을 하늘에 바치려는 모진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음에는 후에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집니다. 아들의 생명을 하늘에 바치려는 아버지가 모질게 느껴지십니까? 아버지가 아 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로 요약되는 마르 9, 2~10에 나오는 아버지는 정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습니다. 바오로는 이 세상에서 누리는 생명보다 하늘나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가르쳐 주고 실천했습니다. 아들의 고통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참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음을 알고 아들을 바쳤습니다.
아들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끝날지라도, 하느님이 아들의 생명을 이끌어 주심을 믿고 따랐습니다. 성부께서는 사랑하시는 아드님 예수님이 죽음으로 내려가지만,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아시고 아드님의 뜻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바오로도 아브라함도 성부께서도 모진 아버지가 아니라, 아들을 진정으로 사랑했기에 아들의 생명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자녀가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한다면 지금 모질게 보일지라도 하느님의 뜻에 맡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