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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섬마을에서 먹은 청국장에 대해

등록일 2016-05-27 02:01 게재일 2016-05-27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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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메주 그리고 아버지
▲ 무섬골당반의 정식
▲ 무섬골당반의 정식

□ 무섬마을의 청국장

어제는 청국장을 먹었습니다. 꽤나 이름난 집이라 기대를 했는데 적잖이 실망했습니다. 며칠 전 영주 무섬 마을에서 먹었던 청국장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입니다. 어제 먹은 청국장은 콩을 삶아 찧기만 했는지 국물이 맑으면서 누런색이었습니다. 무섬에서 먹은 청국장은 발효되면서 풍기는 특유의 찐득한 향기를 머금고 있었고, 국물은 검누랬습니다. 도시는 아무래도 청국장의 냄새를 싫어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청국장의 냄새가 빠진 청국장을 먹어야 합니다.

□ 메주와 `아재개그`

요즘 철지난 개그를 `아재개그`라 부르더군요. 기왕 메주를 말했으니 이참에 저도 그와 관련된 아재개그를 하나 해볼까 합니다. 싸가지 없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비가 군불을 많이 넣었는지 어쨌는지 방문을 열어놓고 잤나봅니다. 다음 날 아비가 죽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야야, 너그 아부지가 와 갑자기 저래 죽었노?”

아들이 말했습니다.

“바람은 불지예, 메주는 떨어지지예, 지가 안 죽고 배깁니꺼?”

싸가지 없는 아들이 아니라 아주 몹쓸 아들놈입니다. 패륜적인 이런 이야기 앞에서 불쾌하기보다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아마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러 할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냉소적이기만 한 아들의 말은 우리의 상식을 웃돕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아들의 말 앞에서 우린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웃음은 바로 거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으로 여겨지는 바로 그 자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리의 은밀한 욕망이 유폐되어 있습니다.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동시에 우리를 억압하는 가부장제라는 권위적 질서에 대한 반감! 이것이 우리의 욕망의 실체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욕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자꾸 모르려고 합니다. 욕망은 실현되지도 그렇다고 사라지지도 않은 채, 저런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록 만듭니다.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도 않고, 아무도 손해 볼 것도 없는 그냥 이야기 하나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서 도저히 불가능한 우리의 내밀한 욕망을 우회적으로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기억의 맛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내든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런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조건입니다. 이 이야기는 메주가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을 때 할 수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콩으로 메주를 쑤고, 메주로 간장을 우려내고, 그 남은 건더기로 된장을 담그는 삶, 버려지는 것 없이 모두 사용되는 식문화 속에서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고 있는 지금 `싸가지 없는 아들이야기`는 더 이상 구전되지 않을 것입니다.

▲ 공강일<br /><br />서울대 강사
▲ 공강일 서울대 강사

사실을 말하자면, 무섬 마을의 청국장이 맛있다고 느꼈던 것은 어렸을 때 제가 먹었던 그 맛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맛 때문이 아니라 그 익숙함 속에 퍼져나간 기억의 맛 때문이었습니다. 밖에서 놀다가 돌아오면 방에는 언제나 메주 냄새가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 냄새에 익숙해질 때쯤엔 저녁으로 된장찌개를 먹었고, 군불로 뜨끈해진 아랫목에서 메주도 사람도 함께 익어갔습니다. 메주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 켜켜이 배인 과거였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먹으며 현재를 살았고, 그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일구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과거 속에 담긴 미래를 살아냈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요.

시간은 흐르지만 현재의 모든 것을 가지고 흐르지는 않습니다. 과거는 시간 뒤켠에 버려집니다. 음식은 배를 채우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의 향과 맛은 과거를 불러옵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기억을 드시겠습니까?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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