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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돌` 부석사를 찾아

등록일 2016-05-20 02:01 게재일 2016-05-2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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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여러 겹의 우연
▲ 공강일

□ 떠 있는 돌과 왼쪽으로 치우친 석등

부석사의 부석(浮石)은 뜬 돌을 뜻한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언뜻 보아 위아래가 서로 이어 붙은 것 같으나 자세히 살펴보면 두 돌 사이가 서로 붙어 있지 않고 약간의 틈이 있다. 노끈을 넣어보면 거침없이 드나들어 비로소 그것이 뜬 돌인 줄 알 수 있다”라고 썼다. 부석사는 부석이 있는 곳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 이렇게 보는 것이 논리적이겠지만 오히려 한 설화에 따르면 부석보다 부석사가 먼저 있었다고 전한다.

이 설화는 의상을 사랑한 당나라의 선묘로부터 시작한다. 의상이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자 선묘는 죽어 용이 되어 의상을 따랐다. 유학을 마치고 신라로 돌아온 의상이 지금의 부석사에서 설법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사이비 종교의 무리 500명이 이곳에 이미 가람을 지어놓고 있었다. 의상의 뜻을 알아차린 선묘는 허공중에 사방 1리나 되는 큰 바위가 되어 사이비 종교의 사찰 위에 떨어질 듯 말 듯 떠 있었다. 놀란 그들의 무리가 흩어지자 의상은 이곳에 들어가 설법을 베풀었다.

이 설화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부석사 무량수전은 일반적인 법당과는 다른 구조로 되어 있다. 거개의 법당이 중앙에 부처님을 모신다면,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은 법당의 왼쪽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의상이 사이비 종교의 사찰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량수전의 터가 가로로 길쭉하게 되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미타불을 중앙에 모시는 것보다 측면에 모시면 훨씬 많은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무량수전의 중앙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석등이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석등은 일종의 이정표다. 여기에 화살표를 새기거나 글자를 써놓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법당의 왼쪽으로 살짝 치우치게 석등을 세워놓았을 뿐이다. 안양문의 계단을 오르며 석등을 바라보면, 석등은 마치 스스로 움직이듯 왼쪽으로 비켜서며 무량수전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석등을 돌아 법당의 오른쪽 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 여러 겹의 우연

무량수전과 관련된 이런 설명들은 하나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야기란 맞아도 그만 틀려도 그만인 것이니까. 우수한 성적으로 학업을 마치고 돌아온 유학파 출신의 유능한 대사가 영주에 가람을 지었을 때, 사람들은 그 이유가 궁금했을 것이다. 당대의 수도 경주를 버려두고 궁벽한 산속에 터를 닦은 이유가 왜 궁금하지 않았겠는가. 사람들은 감히 의상 대사에게 여쭙지는 못하고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석등이 왼쪽으로 치우친 이유에 대한 설명 역시 가설일 뿐 그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우연보다 필연을 좋아하고, 설명 불가능한 것보다는 설명 가능한 것을 좋아하기 마련이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부석사 방문 역시 이런 우연의 연속이었다. 처음에 헌웅이와 둘이서 가기로 했었다. 토요일 날 가기로 했는데 금요일 저녁에 녀석에게서 지금 갈 수 있느냐고 불쑥 전화가 왔다. 마침 집이었다. 시팔이 하상욱의 말처럼 `불금`에는 “알고 보면 / 다들 딱히”(하상욱, `서울시`, 중앙북스, 2013.) 할 일이 없는 법이니까. 옷을 대충 챙겨 입고 가방에다 이것저것 잡히는 대로 쑤셔 넣었다. 헌웅이가 운전을 했고, 나는 여행 경로와 숙박 장소를 그제야 물색했다. 꽉 막힌 길을 간신히 비집고 나와 고속도로에 차를 올렸을 때 평소에 연락도 없던 석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친정에 갔다고 했다. 녀석이 뒤늦게 합류하면서 남자 셋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홍상수는 영화 `북촌방향`에서 `성준`(유준상)의 입을 빌려 우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 적이 있다. “(우연에는) 이유가 없죠. 그러니까 이렇게 이유 없이 일어난 일들이 모여서 우리 삶을 이루는 건데 그중에 우리가 일부러 몇 개를 취사선택해서 그걸 이유라고 (여기면서) 생각의 라인을 만드는 거잖아요.” `성준`의 말처럼 우연은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의미 없음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우연을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러다보면 때로 억지나 억측이 생기기도 한다.

헌웅이가 전화했을 때 내가 집에 없었더라면 우린 금요일에 여행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주에 석구의 아내가 친정에 가지 않았더라면 녀석과 함께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여러 겹의 우연이 겹쳐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다. 그 우연이 어떤 필연을 낳은 것 같지는 않다. 필연이라고 부르기엔 우리의 여행은 평범했고, 삶은 어디든 그저 그렇고 그러했다.

의상을 사랑한 선묘여, 여전히 허공중에 몸을 띄운 그대여, 슬퍼하지 말라.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만남과 헤어짐 역시 한낱 우연일지니. 애타도록 슬퍼하지 말라.

※이 사업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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