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유물 가득한 남산
△남산, 작으면서도 큰 산
워낙 촌놈이었다. 골이 좁아 작은골이라 불리는 골짜기에는 해발 1천m가 넘는 산들이 허다했다. 하지만 그런 산 모두에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었다. 산꼭대기를 `산만디` 또는 `산만당`이라 불렀다. 600m도 안 되는 낮은 곳은, 구릉이니 언덕이니 하는 곱상한 말 대신, 그냥 `만디`라 불렸다. 그런 곳에서 자랐다.
경주의 남쪽에 있는 산을 남산이라 한다. 북으로는 금오봉(金鰲峰)이 있고, 남으로는 고위봉(高位峰)이 있다. 둘 다 채 500m가 되지 않는다. 우리 동네 `만디`만도 못한 곳도 산이냐고 코웃음을 쳤다. 저런 산이라면 한달음에 넘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대를 얕잡아보고 후회하기, 그 특기를 살려 남산을 오르는 동안 `아, 산의 높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하구나!` 몇 번이나 후회했다.
청량산, 백암산, 문수산, 이런 산의 정보를 뒤져보아도 산의 규모를 알려주는 곳은 없다. 산이 넓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능선과 능선으로 이어져 산은 시작도 끝도 없이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경주 남산은 동서 너비 4km, 남북 길이 10km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남산은 측정 가능할 정도로 작은 산인 셈이다.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남산을 소개한 한 사이트는 “골은 깊고 능선은 변화무쌍하여 기암괴석이 만물상을 이루었으니 작으면서도 큰 산”이라고 말하고 있다(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
작으면서도 큰 산, 남산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국사골, 새갓골, 틈수골, 이름 붙여진 골짜기만 해도 43개에 이른다. 이런 골짜기마다 유물과 유적이 있다. 국보 제312호인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비롯하여 보물 12점, 사적 14개, 중요민속자료, 지방유형문화재, 지방기념물, 문화재자료 등등이 산적해 있다. 유적과 유물이 가장 많은 곳은 장창골로 94개이며, 남산 전체로 따지면 694개에 이른다. 수많은 골짜기 중 어디로 올라가든 유적과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그야말로 발에 차이는 것들이 유적이고 유물이다.
△할매부처의 반듯한 발바닥
이 중 가장 많은 것이 절터(寺蹟)로 150개에 이르지만, 그것들은 절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것이 불상과 석탑인데, 이것들은 다행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유물이라곤 해도 불국사나 감은사지의 세련된 그것과는 현격한 차이가 난다. 남산의 불상은 거개가 거칠고 투박하며, 일정한 형식이나 규칙을 갖추고 있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다듬어진 것처럼 보이는 남산의 불상들은 빈궁한 사람들보다 더 곤궁한 모습을 하고 사람들을 맞아주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불상 중 하나가 `할매부처`(보물 제198호 경주불곡마애여래좌상)다. 돌을 조악하게 파낸 후 그 내부에 부처의 형상을 부조해놓았다. 말이 불상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의 형상과는 다르다. 곱슬머리를 하고,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납의(衲衣)를 입고, 이마 가운데에는 백호(白毫)를 하고, 오른손은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그런 불상과는 말이다. 할매부처는 원광도 백호도 없이, 민머리에 두건을 쓰고, 양쪽 어깨를 덮으며 길게 드리워지는 옷을 걸치고, 소매에 두 손을 숨긴 채 앉아 있다.
잘 다듬어진 불상이 아무리 인자하고 평온한 미소를 띤다 해도 할매부처가 가진 평온함을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절에서 볼 수 있는 불상은 정교하게 다듬어져 그것이 갖추어야 할 요건을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불상에는 절제와 균형을 유지하려는 긴장이 스미어 있다. 하지만 할매부처는 어떠한 권위도 근엄함도 잊은 채, 어떠한 속박이나 굴레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무념이나 무상마저 내려놓은 채 그저 앉아 있다, 다만 어정쩡하게.
할매부처의 앉은 자세가 `어정쩡한` 이유는 저 반듯한 발바닥 때문이다. 가부좌를 틀었다면 분명 왼쪽이나 오른쪽 끝에 발등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셈인지 할매부처의 한 가운데에는 오른쪽 발바닥의 정면이 돋을새김 되어있다.
석가모니는 백호에서 나온 광명을 통해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거나 무량세계를 비추어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백호는 석가모니의 능력과 위업의 표식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무게 전체를 견뎌야만 하는 저 발바닥은 무엇인가, 할매부처의 삶을 온전히 견뎌냈을 저 발바닥이 그녀의 표징은 아니었을까.
할매부처는 반듯한 발바닥을 사람들 앞에 척 꺼내놓고 발 냄새를 피웠을 것이다. 그녀는 고단한 사람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고약한 냄새를 풍겨, 사람들이 발 딛고 있는 삶, 사람들이 기어이 견뎌내고 있는 삶,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감각케 하려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에게 삶의 진의가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이 삶 속에 있음을 깨우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어떤 긍정도 부정도 없이,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을까. 오늘도 할매부처는 감실에서 감감한 표정으로 세상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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