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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의사들의 전유물인가

등록일 2016-05-02 02:01 게재일 2016-05-0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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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주<br /><br />한동대 교수·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학부
▲ 김학주 한동대 교수·글로벌에디슨아카데미학부

박근혜 대통령은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의사들의 도움 없이 민간 기관에서 할 수 있도록 추진하고 있다. 이르면 오는 6월말부터 단계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정부가 이처럼 유전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질병 예방에 있다. 인구 노령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병이 걸린 후 치료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턱없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유전자가 치료의 도구로써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인간의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 시퀀싱(sequencing) 비용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수천만원에 이르던 것이 지난해부터 100만원으로 하락했고, 10만원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기술도 이미 개발된 상태이다. 이제 신생아에게 의무적으로 유전자 지도를 그려줄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의 23&Me라는 회사는 소비자가 자신의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해서 택배로 보내면 유전자를 분석하여 언제, 어떤 병에 걸릴 확률이 얼마일지 알려준다. 이는 다소 고가의 서비스다. 그 외에도 의뢰자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선정해 주고, 체질에 맞는 약품을 추천한다. 사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약들이 환자 체질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또 유전자를 분석해서 체질에 맞는 운동법과 음식을 고를 수 있고, 임산부의 경우 태아의 기형 여부를 알기 위해 양수를 채취할 필요 없이 산모의 혈액만으로 태아의 건강을 점검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런 서비스를 개발한 민간기업이 있었지만 그동안 국내 활동 허가가 나지 않아 중국 등지에서 영업을 시작했었다. 의사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반드시 의사를 통해 이뤄지도록 규정해 왔다. 이번에도 진료에 관한 한 유전자 분석은 의사들의 영역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우리는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해 불행한 사고를 낸 윤 일병과 임 병장을 기억한다. 그들을 꼭 군대에 보내야 했을까? 현대 의학은 그들을 군대에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전자 정보의 데이터 베이스가 커지면서 “이런 형태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조직 적응력이 극히 부족해서 사고를 낼 확률이 높다”는 통계적 유의성을 얻을 수 있다. 즉 이런 해법은 의학이 아니라 통계의 영역인 것이다.

미국에 FDA가 있듯 한국에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있다. 민간업체들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면 국민보건 안전을 담당하는 기관이 통제할 것이다. 굳이 그 서비스가 의사를 통해야만 한다는 논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유전자 마커(marker)들의 기능이 알려질수록 유전자를 편집해서 치료하는 방법들이 개발되고 있다. 2013년부터 급물살을 탄 것 같다. 바야흐로 이제 헬스케어의 중심은 유전자다. 이런 가운데 만일 의사들의 기득권 때문에 국내에서 관련 서비스가 지연되고 한국인들이 미국 등 해외기업을 이용할 경우 우리는 유전자 정보에 있어 종속될 가능성도 있다. 즉 해외업체가 한국인 유전자를 먼저 분석하고 관련 특허를 낼 경우 한국인 유전자 정보를 얻기 위해 해외업체에 로열티를 지불하게 될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지금 한국이 농산물 종자를 사 올 때 카길(Cargill)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의사들은 주로 내시경, 영상진단을 통해 암을 진단한다. 그리고 비싼 진료비를 받는다. 그러나 췌장암, 폐암 등 조기 발견이 어려운 암들이 많다. 환자의 혈액 내 유전자 이상유무를 통해 암을 간단하고 저렴하게 진단할 수 있다면 서민들에게 복된 소식일 것이다. 또한 암을 치료한 환자들이 재발 여부를 점검할 때도 편리한 방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기득권을 가진 의사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용기 있는 싸움이다. 이를 통해 의사들의 밥그릇 크기는 줄겠지만 수많은 젊은이들이 훨씬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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