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강일의 바람의 경치 <br>주왕산에 얽힌 사연
참 이상한 산도 다 있지. 등산이라 하기에도, 그렇다고 산행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곳, 산보든 산책이든 그런 말로도 충분한 곳. 주왕산, 그 중에서도 `주왕계곡코스`를 걷는 일은 이런 일이지.
참 볼 것도 많지. 대전사를 지나 잘 다져진 흙길을 따라 걸으면 기암을 볼 수 있지. 병풍처럼 바위가 펼쳐졌다고 해서 병풍바위라고도 불리지. 주왕의 자식들이 달을 보았다는 망월대도 있고, 그 옆엔 그것만큼이나 높은 급수대도 있지. 물을 공급받는 곳이라니…. 신라 무열왕의 6대손인 김주원이 왕으로 추대되었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왕위를 양보하고, 신하들을 피해 이곳에 궁궐을 짓고 살았다지. 산마루에 궁궐을 짓다보니 샘도 우물도 없어 계곡 물을 퍼 올렸다지. 그래서 그곳을 식수대라 부른다지. 학이 둥지를 틀었다고 해서 학소대, 그 맞은편엔 떡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시루봉. 여기서부터는 이제 폭포를 만날 수 있지. 용추폭포를 지나면 절구 폭포. 절구폭포를 지나면 용연 폭포.
이렇게 걸어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되지. 넉넉하게 서너 시간으로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지.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용연폭포를 보고 돌아 나와 후리메기삼거리에서 주봉으로 오르면 되지.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산을 올라야 하니 힘은 배로 들겠지. 더 걷고 싶다면 용연폭포에서 금은광이 삼거리로 내처 내달려 달기폭포를 지나 월외로 내려오는 방법도 있지. 족히 대여섯 시간은 걸릴 테지. 그래도 산이 높진 않아 그렇게 힘들진 않을 테지.
그런데 참 이상하지. 이 산은 `주왕`이 여기에 머물렀다고 해서 `주왕산`이라고 불리지만, 그 `주왕`을 특정할 수는 없지. 어떤 사람들은 중국 상나라의 마지막 왕이자 폭군인 주왕(紂王)이라고 말하기도 하지. 그런가하면 당나라의 주도(周鍍)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주도는 `주(周)나라를 다시 일으켜 왕이 되겠다`며 스스로 `후주천왕`이라 칭했다지. 결국 반란에 실패하고 이곳까지 숨어들었으나, 마일성 장군에게 최후를 맞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 마지막으로 급수대를 말하면서 언급한 김주원일 것이라는 설도 있지. 이 설에 따르면 김주원은 왕위를 내어주고 이곳으로 들어와 궁궐을 짓고, 주원왕이라 불렸다지. 후에 `주원`의 `원`이 빠지고 주왕산으로 굳어졌다고들 하지.
하지만 저 먼 중국의 주왕이 이곳에 왔을 리는 만무하지.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주왕은 무왕에게 정벌당하자 보옥으로 장식한 옷을 뒤집어쓰고 스스로 불 속으로 뛰어들어 죽었다고 하지. 그런 그가 신라까지 와 죽을 틈은 없었을 테지. 주도의 반란은 결국 실패하고 유주(幽州)로 달아나 죄를 기다리다 삶을 마쳤다지. 이것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 왕위를 찬탈당한 김주원의 억울함을 달래기 위해 낭공대사(空大師)가 `주왕사적(周王寺蹟)`을 적었다지. 이 `사적`은 김주원의 파란만장한 삶을 주도의 이야기에 대입하여, 그를 `후주천왕`의 위치로 격상 시키는 일종의 가상소설이라 할 수 있지.
시간이 지나고 김주원의 이름도 자취도 사라지고, `주왕사적`만 남게 되었다지. 후대 사람들은 `주왕`이라는 말만 듣고, 그것이 상나라의 주왕이겠거니, 당나라의 주도겠거니 하고 그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고, 그들과 관련된 이름을 산 곳곳에 가져다 붙였겠지. 어쩌면 달기마을, 달기약수, 달기폭포는 `주왕`을 상나라의 주왕으로 오해해서 생긴 이름일 테지. 그도 그럴 것이 `달기`는 주왕의 애첩이었으니 말야. 기암(旗岩)은 마장군이 대장기(大將旗)를 세웠다 해서 이름이 붙여졌다지. 주왕굴은 주왕이 동굴로 떨어지는 물을 받아 세수를 하다가 마장군의 화살에 맞고 죽은 곳이라 하지.
참 이상도 하지. 주왕산은 주왕이나 주도와 어떤 관련도 없지만, 단지 `주왕`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 이름에 현혹되어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지. 기암이니, 주왕굴이니, 마치 직접 주왕을 보기라도 했다는 듯 이야기를 잘도 만들지. 주왕산은 기실 산 이상도 이하도 아닌, 단지 산일뿐인데도 말이지.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하지.
“사실은 공허하게, 움직일 수 없이, 거기 있기에 다른 것이 된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이야말로 사실주의 예술의 뛰어난 미덕이다(황현산, `찌푸린 얼굴들`, `밤이 선생이다`, 문학동네, 2015, 163면.)”.
주왕산은 움직일 수 없는 산으로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지. 그래서 사람들은 저 산에다 어떤 말이든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것이겠지. 그 말을 만들어낸 사람도, 그 사람이 만들어낸 말이 사라질지라도 저 산만은 오래도록 남을 테지. 산은 남아 또 다른 말을 허락하겠지. 그리하여 인걸은 가고 없어도 산천은 유구할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