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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역에 얽힌 추억

등록일 2016-03-25 02:01 게재일 2016-03-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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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강일의 바람의 경치 <br>김천역과 뉴욕제과점,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
▲ 김천역 광장은 특기할만한 것을 찾을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흔적들이 묻어 있다. 그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우거나 무시할 수 없는 형태로 남아 있다.
▲ 김천역 광장은 특기할만한 것을 찾을 수 없는 그저 그렇고 그런 곳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는 흔적들이 묻어 있다. 그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우거나 무시할 수 없는 형태로 남아 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처음으로 서울이란 곳엘 가게 되었다. 김천시외버스터미널과 기차역을 연결하는 육교를 지나 역에 도착했을 때 눈은 삽시간에 쌓이고 있었다. 어리고, 어리석은 마음에 기차가 운행하지 않을까봐 마음을 졸였다. 사람이 많아 입석을 끊어야 했다. 객실과 객실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는 조잡해서 기차가 달리는 중에도 문을 열 수 있었고, 담배를 피울 수도 있었다. 객실과 객실의 `사이`이기도 한 이곳에 연결통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겠다. 하지만 그때는 이곳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이름이 없었다. 이 `사이`는 그저 `거기`나 `저기`로 불렸다. 이름 없는 것들의 운명이 그러하듯 그것들은 안전이라거나 청결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방치의 대상이었던 이곳은 낭만, 젊음, 운치라고 불리는 의미들이 쌓여 그 통로를 잘 감싸 주었다. 그런 것들과 함께 서너 시간을 덜컹거려야 했지만, 거기에 피로감 같은 것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상행 길은 어떤 기대와 설렘으로 흥성거렸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쯤이면 그런 흥분은 여독 속에 용해되어버렸다. 육교 아래엔 빵집이 있었다. 90년대의 크리스마스는 지금 보다 훨씬 더 큰 기대와 둥근 흥분 속에 빛나곤 했다. 들뜬 사람들이 빵집 문을 여닫을 때 들리는 작은 종소리가 육교 위로까지 솟아올랐다. 케이크나 빵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부러워했다. 평화육교. 시외버스터미널과 김천역을 잇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이 육교가, 240m가 아니라 2천400미터처럼 멀게 느껴졌다. 한없이 긴 육교를 걸으며 다가올 삶의 무게를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삶의 무게감을 피하고 싶어서였을까. 집에 내려올 때면 김천보다는 대구를 찾았다. 서울역에서 밤 11시 30분 즈음, 무궁화호를 타고 동대구역에 도착하면 새벽 4시가 채 되지 않았다. 돈이 넉넉했다면야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갔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시간엔 어차피 버스도 없었으니까, 차라리 지하철이 다닐 때까지 시간을 지우는 것이 더 나았다. 마침 역 앞에는 포장마차가 즐비했다. 직행버스를 굳이 버려두고 늦은 시간 기차를 타는 것도 이 포장마차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맥주잔에 가득 소주를 따르면 딱 반병이 된다. 포장마차에는 그런 잔술을 팔았다.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첫잔은 으레 `원샷`을 했다. 새벽, 빈속, 찬 소주. 식도를 타고 내리는 알코올의 알싸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알싸함을 느끼는 나를 온전히 감각할 수 있었다.

다시 김천역을 찾은 건 십 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순전히 육교 아래의 빵집 때문이었는데, 이미 빵집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 번도 들어가 본적 없는 그 빵집이 그리워진 건 김연수의 소설 `뉴욕제과점`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서술자인 `나`는 `뉴욕제과점`의 아들이다.`나`와 작가가 꼭 일치하란 법은 없지만 그럼에도 이 소설 속의 `나`가 작가 자신이기를 바라게 된다. 그 바람은 내가 알고 있던 곳을 김연수 역시 알고 있다는 아주 사소한 동질감에서 비롯된다. 먼발치에서 동경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그곳에 김연수란 작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당시 내가 육교에서 느꼈던 스무 살의 막연한 불안을 위로받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나`지만 주인공은 `나`가 아니라 뉴욕제과점이다. 1965년부터 시작한 이 제과점은 설날,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추석, 크리스마스와 같은 “대목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호황기를 누린다. 그랬던 것이 80년대를 지나며 조금씩 움츠러들기 시작하다가 90년대 기업형 빵집이 출현하면서부터 사양길을 걷게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김연수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뉴욕제과점만이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된다. 제과점과 함께 삶을 견뎌온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쇠락이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유년의 추억과 그러한 추억의 흔적들을 가진 공간의 사라짐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그러한 사라짐과 그러한 사라짐으로 인한 허탈감과 참담함에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와 속절없이 사라져야만 하는 것들과의 화해에 대해 말하고 있다.

▲ 공강일 자유기고가
▲ 공강일 자유기고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뭔가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 다음에 나는 깨달았다. 이제 내가 살아갈 세상에 괴로운 일만 남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나도 누군가에게 내가 없어진 뒤에도 오랫동안 위안이 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김연수 소설집 `내가 아이였을 때`(문학동네, 2003), 91면).

사라지는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비물질적인 것일 때가 더 많다. 만질 수 없는 비물질적인 것이기에 더 오래도록 남겨질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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