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펼치기가 두렵다. 텔레비전 켜기도 무섭다. 새끼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호랑이의 공격에 맞서 피투성이가 된 어미 곰,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열심히 알들을 돌보다가 죽어가는 가시고기 이야기가 한없이 부끄러운 추악한 인간사들이 연거푸 사회면을 장식한다. 낯선 칼잡이들이 나서서 정치권이 공언해온 개혁 약속 모두 엎어버리고, 조변석개의 살생부 칼춤을 추는 야만의 장면들이 속속 정치면에 대서특필된다.
맨발로 탈출한 인천의 16㎏ 소녀, 냉동상태로 발견된 부천 초등학생, 미라 여중생에 대한 끔찍한 기억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듣도 보도 못한 참극이 또 드러났다. 친부와 의붓어미가 만 6살 사내아이를 영하 12도의 엄동설한에 옷을 발가벗겨 욕실에 감금한 채 표백제나 찬물을 퍼부었단다. 그리고 20시간 동안이나 울부짖는 아이를 방치해 결국 숨지게 했단다. 하찮은 미물 사이에서조차 유례를 찾기 힘든 해괴망측한 비보는 귀를 씻고 싶게 한다.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는 새로운 공천제도의 시발점을 기대하던 국민들의 여망은 완전히 무너졌다. 궤변으로 범벅이 된, 앞뒤 아귀조차 맞지 않는 이유들을 주렁주렁 매단 `공천학살극`이 연일 정치권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기기 위해서`라는 전제는 `민주주의`의 적이다. 참된 민주주의는 분명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지만, `과정`의 비민주까지 용허하지는 않는다. 옆구리에 칼을 차고 으스대는 민주주의는 진짜가 아니다.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인적청산` 여론은 추잡한 패거리정치의 단골 먹잇감이다. 정치무대에서 제 역할을 못하는 정치인들을 솎아내고 싶어 하는 민심에는 허물이 없다. 그러나 패거리정치를 주도하는 정치꾼들은 `인적청산` 여론을 악용하여 `차도학살(借刀虐殺)`의 칼춤 판을 만들어내는데 능란한 선수들이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새 인물 발탁`이라는 꼼수로 `제 사람 심기`를 획책하는 일인데, 대중은 곧바로 알아내지 못한다.
통합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판별해 해산시킨 헌법 제8조 4항이 또다시 전문가들 입줄에 오르내린다. 이 조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돼있다. 엄밀하게 들여다보면 악착같이 계속되고 있는 여야정당의 야만적 공천행태는 명백히 `비민주적`이다.
20대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이제 곧 여당은 “무능하고 위험한 좌빨들에게 정권을 넘길 것이냐”고 보수성향의 민심을 위협할 것이다. 야당은 “독재정치로 회귀하고 있는 수구꼴통들에게 나라를 계속 맡길 것이냐”고 진보민심을 겁박할 것이다. 정치꾼들의 눈에 유권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몇몇 장난질만으로도 홀라당 넘어가는 문문한 존재들일 따름일 것이다. `컷오프`를 당하고 무소속으로 살아난 사례는 결코 흔하지 않다.
`공천혁명` 실현은 무기한 연기됐다.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장담하다가 공천과정에서 오만 능멸을 당하면서 체면이 한껏 구겨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심중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절차적 민주주의`에 닿기는커녕 속 보이는 당쟁만 거듭해온 새누리당 공천은 유권자들 눈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패권주의 청산을 위한 읍참마속을 감행한 더불어민주당 공천과 어떻게 달리 투영될 것인가.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일은 자식이 부모를 해치는 일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패륜(悖倫)이다. 4월 총선 권력쟁탈전에 넋이 빠진 정치권은 인간의 탈을 쓰고 저질러서는 안 될 악행들이 버젓이 횡행하는 위태로운 사회 병증에 대해 모든 역할을 포기했다. 한없이 깊어지고 있는 정치불신의 끝가지에서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지를 찾아낼 것인가. 그야말로 `말세(末世)`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 우리는 지금 `도덕과 질서가 타락하고 규범이 무너진 세태`의 늪 한복판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