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율법에서의 한자 한획

등록일 2016-02-18 02:01 게재일 2016-02-18 13면
스크랩버튼
▲ 장영일신부·천주교 군위묘원 담당
10년도 더 전에 어느 지방의 본당 신부를 할 때의 일입니다. 겨울의 어느 주일날 새벽 미사 시간이었습니다. 강론을 끝냈는데 처음 보는 교우 몇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저는 미사를 드리며 늦게 들어오신 그분들을 보았습니다. 영성체 시간이 되어 그분들이 제 앞에 오셨습니다. 성체를 모시려는 그분에게 “늦게 오셔서 성체를 드릴 수 없습니다.” 라고 부드럽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와 미사를 마쳤습니다. 늘 하던 대로 문 뒤에 서서 인사를 드리는데 그분들이 제게 다가와서 왜 성체를 못 모시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늦게 오셔서 그렇다고 말씀드리자 그분들이 그렇게 많이 늦은 것도 아니고 객지에 와서 겨우 성당을 물어서 찾아 왔는데 이제 어디에 가서 또 미사를 드리느냐고 하면서 아주 서운해 하시며 돌아서셨습니다. 이분들의 서운해 하는 모습이 제 안에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제 안에서 바리사이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저의 군대 시절의 경험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철원의 전방 부대에서 후반기 신병 교육을 받으며 지내던 때의 일입니다. 추운 겨울, 눈에 덮인 부대에서 성탄절이 와도 성당에도 가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몸이 많이 아파서 읍내를 지나 상급 부대의 의무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지나던 길에 성당을 보았고 귀대하는 늦은 저녁 시간에 동네의 성당 근처의 식당에서 인솔병과 함께 저녁을 시켜 놓고 기다리던 때였습니다. 저는 인솔병에게 화장실에 간다고 하고 옆의 성당으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사제관 문을 두드리자 벽안의 노인 신부님이 나오셨고 몸에 맞지도 않고 때에 절은 군복의 저를 보시고 성당으로 데리고 가서는 묻지도 않고 성체를 영해 주시고 제 머리에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늦게 온 저를 찾아 다녔던 인솔병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욕을 들었습니다. 그날의 기억 때문입니다. 눈물 젖은 그날의 영성체는 제 안에 가장 감격적인 시간으로 간직해 있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형편과 사정을 헤아리기 보다는 원칙을 들이대는 저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 그토록 나무람을 듣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았습니다.

마태 복음 5장 18절은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점 한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 말씀이 얼마나 소중하고 엄하게 지켜져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1코린 2장 7절은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점 한획도 없어져서는 안 되는 성경 안에 담겨져 있는 하느님의 지혜는 도대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펴서 일점 일획의 잘못도 없이 살도록 해주시는 것이 하느님의 지혜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지혜는 십자가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사람을 향한 끝없는 용서, 무한한 자비와 사랑, 이것이 성경 말씀 안에 담긴 하느님의 지혜이며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을 성경 말씀 전체를 담아내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경은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처벌과 단죄가 아니라 용서와 자비와 사랑만이 사람을 살립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결국사람을 살리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겠습니다.

삶과 믿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