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2011년, 우리는 교구 설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새 시대의 복음화`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며, 주님의 이 말씀을 함께 기억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 시대에 주님의 모습을 보지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도 못한 이들에게,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주님의 뜻을 전하라는 주님의 간절한 부르심이었고, 우리 모든 교구민들은 그 부르심에 기꺼이 실천하는 삶으로 응답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이웃`의 사전적 의미는 `가까이 있는 사람 또는 사물`을 가리킵니다.`이웃`의 복음적 의미는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이렇듯, `이웃`은 `가까이 가서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고, `자비를 베풀기 위해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다.
“그를 보고서는, 그에게 다가가, 돌보아 주었다.” 강도 만난 이를 지나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돌보아`준 사마리아인.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의 `이웃`이 아니었지만, 그는`가까이 다가감`으로서 강도 만난 이의 `이웃`이 되었고, `자비`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의 실천은 가까이 다가감에서 시작합니다. 가까이 다가가야지만 서로 `이웃`이 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교정(矯正), `뒤틀린 것을 바로잡다.`
오늘날, 마음과 삶을 나눌 기회가 점점 사라져가는 우리 사회는 양심이 뒤틀리고, 마음이 뒤틀리고, 가정생활이 뒤틀리고, 사회생활이 뒤틀리고, 관계가 뒤틀린 이들로 인해 점점 각박하고 차가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정사목은 이렇게 `뒤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 `이웃`에 대한 `이웃`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회개하는 `이웃`의 죄까지도 은총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믿기에, 그 `이웃`의 죄로 인해 깊은 아픔 속에 살아가는 또 다른 `이웃`의 상처를 하느님께서 치유해 주시리라 믿기에, `뒤틀린 것을 바로잡는` 하느님의 지혜를 간절히 청합니다.
사마리아인처럼, 누구라도 먼저 `다가가야` 서로 `이웃`이 될 수 있고, 누구라도 먼저 `다가가면` 서로 `이웃`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모습을 보지도, 그분의 음성을 듣지도 못한 이들에게,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주님의 뜻을 전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으로, 교정사목과 함께 `이웃`의 `이웃`이 되어 주십시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