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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비애

서동훈(칼럼니스트)
등록일 2016-01-20 02:01 게재일 2016-01-2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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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올림픽 때 대만은 `대만국기`를 들지 못했다. 매화 꽃송이 속에 태양과 오륜이 그려진 `대만올림픽위원회 깃발`을 들고 입장했다. 공식적으로 대만은 중국에 흡수된 것이다.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강력히 밀어붙였다. “대만과 수교하는 나라는 중국과 수교하지 못한다”란 원칙을 공포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대만과의 외교를 끊었다. 노태우 정권 당시 서울에 있던 대만 대사관도 청천백일기를 내리고 철수했다. 거대한 시장인 중국과 통상하기 위해서는 대만과의 거래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1992년에 `92공식`이 나왔다. 1국 2체제를 공포한 것이다. 중국은 하나지만 체제는 달리한다는 공식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를, 대만은 자본주의 체제를 각각 유지한다는 뜻이다. 그후 `대만`이란 국호는 국제사회에서 사라지고 대만국기도 통용될 수 없었다. 올림픽 때 공식명칭은 `차이니즈 타이페이`이고, 국기는 대만올림픽위원회의 깃발만 허용되었다. 대만은 중국보다 경제수준이 훨씬 높은 선진국이지만 `작은 섬나라`이고,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1개 성(省)`으로 취급할 뿐이다. 대만 내부에서도 국민당은 `하나의 중국`에 동의하지만, 민진당은 `대만독립국`을 고집한다.

대만 출신의 16세 된 걸그룹 멤버 쯔위양이 숙소 침대에서 대만국기를 흔드는 영상이 방영되면서 중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황안이라는 대만출신 가수가 그것을 고자질했고, 중국정부는 “JYP는 중국 공연을 할 수 없다”는 압박을 가했고, JYP는 몇차례 사과하고, 쯔위도 검은옷을 입고 “중국은 하나이며 저는 제가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그 사죄는 대만 청년층을 격분시켰고, 민진당 총통 후보 차이잉원은 “국적문제를 두고 사죄하는 대만인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일제때 한국인이 태극기를 들고 길거리에 나섰다면 그는 `독립군`으로 취급돼 법정에 섰을 것이다. 지금 대만의 처지가 그와 같아서 재판 대신 경제제재를 당한다. 어쩐지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도는 것 같다.

/서동훈(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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