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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있는 싸움

등록일 2015-12-31 02:01 게재일 2015-12-3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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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일 신부·천주교 대구대교구 사목국장
신앙인이 비신앙인보다 5~6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또 병원에 있는 환자도 신앙인이 비신앙인보다 훨씬 빨리 낫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신앙인은 희망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낫는다는 희망,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고통이 없는 기쁨이 가득한 것에 대한 희망, 영원한 행복에 대한 희망이 있기 때문에 신앙인들은 어렵고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잘 견뎌 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희망이 있다면 지금 힘들어도 이겨낼 힘이 나고 행복한 것입니다.

시인 도종환씨도 자신의 시 `암병동`에서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온 세상이 암울한 어둠뿐 일 때도 우리는 온몸 던져 싸우거늘 희망이 있는 싸움은 진실로 행복하여라”하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그릇된 가치, 부정, 부패 등과 맞서 싸우는 것도 희망이 있는 싸움이며, 그리스도인이 겪는 십자가도 희망이 있는 것이기에 행복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장차 받을 행복에 비한다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고통은 희망이 있는 고통이며, 부활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현재의 십자가를 기꺼이 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타볼산으로 가셔서 당신의 감추어진 신적인 면모를 보여 주십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그것은 그들이 앞으로 닥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은 수난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정신력이 그렇게 강하지 못하기에 예수님의 수난을 받아들일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앞으로 다가올 어려움 가운데서도 승리의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당신의 신적인 면모를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은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기쁨이 없고 희망이 없다면 우리는 아직 참신앙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살다보면 고통 받고 짜증스러울 때가 더 많지만 그래도 우리가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그것을 약속한 예수님과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형자매 여러분, 루카 9:28~36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신적인 모습은 결국 우리가 희망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 필리 3 :17~41에서 하신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새기며 우리도 언젠가는 예수님의 신적인 영광에 참여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집시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키실 수도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3 :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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