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연변대학서 제5회 `이육사 문학제`
시낭송·세미나 등 항일·문학정신 기려
조선족·한족 학생 한글작품 시상식도
상해 임시정부청사 찾아 독립투사 재조명
육사의 딸 이옥비씨·손자 이승엽씨
윤봉길 의사 기념관서 추모제도 지내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이육사의 대표작 `청포도`, `절정`, `광야`가 중국 연변에서 조선족 청년들에게 울려 퍼졌다.
일제강점기 끊임없는 독립투쟁과 함께 문학 활동을 벌이면서 주옥같은 시를 남긴 안동출신 항일 저항시인 이육사. 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중국 이육사문학제가 지난 18일 오후 연변대학에서 열렸다.
경북도와 안동시가 주최하고 (사)이육사추모사업회와 중국연변작가협회(회장 최국철)가 주관한 중국연변 이육사문학제는 2011년 9월 첫 번째 개최한 이후 이번이 다섯 번째다.
이날 문학제는 학술대회, 문학강연, 시낭송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진행됐으며 현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작가협회 회원 등 300여명이 참가했다.
먼저 이육사의 시 세계를 탐구, 분석하고 시인의 문학정신에 대해 토론하는 학술세미나가 마련됐다. 이날 한양대 국문학과 유성호 교수는 `저항으로서의 이육사 시와 그 서지적 사항`을 발표한데 이어 `이육사와 중국 현대문학` 의 내용으로 연변대학 조문학부장 우상렬 교수가 각각 발표했다.
우 교수는 주제발표에서 “이육사는 한국문학 가운데에서도 시적 영역의 높은 우월성을 간직하고 있다” 며 “그는 중국 문학계까지 목가적이면서도 웅혼한 필치로 민족의 독립 의지를 기탄없이 표현했다”고 평가했다.
또 `현대시조 어떻게 쓸 것인가`를 주제로 강인순 시인의 강연에 이어 한국과 중국의 문인 27명의 시화전작품 전시회도 열렸다.
중국 조선족과 한족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모한 한글작품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가족들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으며 연변일보, 연변방송 등 현지 언론의 취재열기도 뜨거웠다.
시상식에서 강미홍(22·연변대) 씨가 육사문학상 대상을 받는 등 조선족, 비조선족 학생 53명에게 상과 1천200여만원의 장학금도 지급됐다.
(사)이육사 추모사업회 권부옥 이사장은 “시인이며 독립투사인 이육사선생은 여러분의 나라 중국에서 공부하고, 항일 투쟁으로 극악한 일제에 의해 북경 감옥에서 순국한 분이다” 며 “이 행사를 계기로 이육사의 문학을 이해함으로써 한국과 중국의 젊은이들이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상호 이해와 우호의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고 말했다.
광복 70돌 맞아 찾은 용정·상해…
항일 시인·독립투사 자취 곳곳
(사)이육사추모사업회는 올해가 광복 70주년 기념해인 만큼 윤동주 시인 등 당대 일제에 저항한 문인들과 항일투쟁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재조명하기로 했다.
이육사추모사업회 일행들은 지난 20~22일까지 길림성 조선족 자치구역인 용정시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용정시의 경우 이곳 간판마다 글씨를 쓸 때에도 한글은 위에다 쓰고 그 아래쪽에 한문으로 써져 있다. 낯선 중국 땅이 아니라 강원도 오지 어느 곳쯤 될 것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중국 속의 한국`이다.
용정시 외곽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대성중학교는 80년대 말 이 곳 옛터를 대한민국에서 다시 복원한 것이다. 이 학교에는 윤동주 시인이 당시 식민지 지식인들의 불안과 절망, 광복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서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이날 추모사업단 일행들은 각종 자료를 통해 그의 부드러운 내면에 투철한 항일 민족정신을 차분하게 시로 승화시킨 점을 확인했다.
이육사추모사업회 일행들은 21일 상해 도심 가운데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데 이어 윤봉길 의사의 기념관 입구에서 추모제를 지냈다.
중국 내에서 남아 있는 가장 대표적이며 중요한 역사성을 간직한 상해임시정부청사는 1926년부터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까지 사용됐다. 이후 일본의 감시와 탄압때문에 독립투사들은 중국의 여러 지역으로 청사를 이전하는 곡절을 겪게 된다. 1989년에는 상해가 도시개발계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요청에 의해 1993년에 마침내 복원됐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3.1운동이 일어난 직후에 조직적 항거를 목적으로 건너간 독립투사들이 활동하던 본거지인 만큼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곳이다. 1919년 4월 11일 29명의 민족 지도자 대표들이 모여 임시정부 수립을 위한 회의를 열었고, 이 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처음으로 정해짐에 따라 독립투사들의 애환과 비장한 애국정신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때마침 이곳에서 육사의 따님 이옥비(75) 여사는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육사의 손자, 퇴계 이황선생의 16세손인 이승엽(41)씨가 고모인 옥비 여사가 상해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중 나온 것이다.
이육사추모사업단 일행들은 일정 내내 옥비 여사와 승협씨가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방문해 추모제를 지내는 등 다정다감한 모습에 수시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앞서 LG그룹 비서실에 근무했던 승협씨는 현재 상해시 경영자 교육과정(MBA)을 밟고 있다. 그는 육사의 기일이면 어김없이 제사를 지내는 등 종손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LG구릅 측이 경영자 교육과정 대상 나라를 미국, 중국 가운데 선택할 것을 권유할 당시 승협씨가 중국을 선택한 것은 바로 할아버지 육사의 흔적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였다. 한국 측 참가단을 이끈 조영일 이육사문학관장은 “옥비 여사와 이육사 선생 손자의 만남은 이번 행사의 의미를 한층 더 높이는 계기가 됐다“ 며 “앞으로 문학인, 독립 투사할 것 없이 우리 민족이 중국 곳곳에서 일제에 항거한 흔적을 더욱 고양하고자 활동영역을 넓혀가겠다” 고 말했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상해에서
/권광순기자 gskwon@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