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주면서 사는 여유

등록일 2015-09-17 02:01 게재일 2015-09-17 13면
스크랩버튼
▲ 이상학포항 제일교회 목사
옛날 한 한적한 시골교회에 `밤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밤잠이 없는 노목사님이 교회당에 나갔다가 교회당 구석에서 인기척을 들었습니다. 웬 사람이 지게에 짐을 지고 일어나려고 하다가 말고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옛날 한국의 초대교회에는 `성미`(聖米) 제도가 있었습니다. 밥을 짓을 때 쌀 한숫가락, 두 숫가락을 떼어 모아두었다가, 주일날 교회의 성미통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중에 일용할 양식이 떨어진 사람이 살짝 와서 그 쌀로 급한 끼니를 떼우게 하는 것입니다. 가난한데 자칫 자존심까지 상하지 않도록, 후미진 곳에 성미통을 두어 약한 자의 마음을 배려하는 섬세함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노목사님이 보니, 한 밤중에 교회 성미통을 찾아와서, 쌀을 큰 자루에 퍼서 드는데, 뒷모습을 보니 자기 교회 성도 같지는 않았습니다. 밤손님이었던 것이지요. 성미통에서 쌀을 큰자루에 잔뜩 퍼내긴 했는데, 힘이 부쳐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목사님은 지게 뒤로 돌아가 도둑이 일어서려고 하는 것을 지그시 밀어 주었습니다. 놀란 도둑이 힐끗 뒤돌아 보았습니다. “그것 가지고 식구가 먹고 살겠는가? 좀 더 넣어서 가져가게. 내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겠네.” 하고 따뜻하게 말한 후, 자루에 쌀을 더 담아주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 낯선 사람 하나가 가족과 함께 주일예배에 앉아 있었습니다.

종교를 한자로는, 宗敎라 합니다. 마루종(宗)자에, 가르칠 교(敎), 인간의 근본과 뿌리를 가르침이요, 세상 모든 삶의 근본을 가르친다는 뜻입니다. 세상이 인터넷에, 컴퓨터에, 온갖 종류의 물질문명으로 치장을 합니다. 이 복잡한 물질문명을 다루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제도와 시스템과 그것을 이끄는 철학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부합하느라, 종교도 하나의 시스템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운영함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따지게 되고, 능률과 실효성으로 저울질을 합니다. 합리적 경영정신을 갖지 않으면 큰교회 하기 힘들다 하여, 교회경영학이라는 것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것이 필요 없다 함이 아닙니다. 본체와 꼬리가 바뀌어 버리면 안된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 베풀며 사는 것, 주면서 사는 여유, 그것이 삶을 풍요하게 합니다. 노목사님의 단순하고 소박한 사랑을 갖고 싶습니다.

삶과 믿음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