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 경제 견인할 것<BR>쉼터마다 예술품 가득해야<BR>후학양성 위해서도 힘쓸 터
“신라 천년고도 경주는 경북만의 경주가 아닙니다. 한국 최고의 명지죠. 솔거미술관 개관을 시작으로 보다 많은 미술관이 곳곳에 세워져 우리의 유구하고 아름다운 문화의 맥이 끊어지지 않게 널리 알려야 합니다”
지난 21일 개관한 경주 솔거미술관에 60여 년 창작 여정의 모든 것인 작품 830점을 기증한 수묵화의 대가 소산(小山) 박대성(70) 화백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바람을 내비췄다.
26일 박 화백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경주세계문화엑스포공원 내 솔거미술관은 그가 인고의 세월을 감내한 붓질 고행의 궤적을 보여줬다. 축하한다는 인사에 박 화백은 “6살 때부터 키워왔던 꿈이 오늘, 현실로 이뤄져 감격스럽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솔거미술관이란 이름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그는 “신라시대 뛰어난 화가였던 솔거 선생의 이름을 딴 만큼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보다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훌륭한 미술관이 될 것”이라며 명칭을 둘러싼 그동안의 논란에도 괘념치않아 하며 “개관 기념 특별전으로 1~5전시관에서 자신의 작품들이 전시되는 것만으로도 더할 수 없는 영광”이라 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신라 황금보물들과 함께 전시되고 있는 `불국사 설경`을 비롯해 `고대의 꽃`이라 할 신라 경주를 소재로 한 작품과 `독도`, `솔거의 노래`, `남산`, `길오양도` 등 48점을 우선 선별해 전시한다고 하더라고요.”
8m에 이르는 대작인 최신작 `독도`에 대해 그는 “독도에 갔을 때 하늘에 떠있던 구름이 용처럼 보였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독도 위를 용이 감싸고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됐다”면서 “용이 손아귀에 일본 국기를 움켜쥐고 있다”며 찬찬히 음미할 것을 권했다. 일본의 독도야욕을 은유한 것이다.
솔거미술관이 개관 전 명칭 논란이 빚어졌던 것과 관련해서는 “시립이나 공립미술관이 화가의 개인 이름을 따서 지어진다는 것은 아직 많은 시간이 걸려야 이뤄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좀 더 명확한 계획이 사전에 준비되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박 화백은 “골목마다 쉼터마다 예술품이 넘쳐나는 격조 높은 나라를 만들 때가 됐다”며 “지방 정부가 품격 있는 미술관을 세우고 기업들이 작가들을 지원하는 데 적극 나선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견해는 문화융성시대에 문화예술이 경제를 이끌어가면서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최근의 정부 정책과도 부합되는 셈이다.
동양화가 서양화에 밀려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자 동양화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며 예술론 강의도 곁들였다.
“서양화가 밝고 어두움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데 반해 동양화는 붓이 품어내는 그 본질을 추구하죠. 오히려 앞으로 색을 쓰는 유화보다 단색조이지만 심오한 철학과 깊이가 들어 있는 먹그림의 농담이 각광을 받을 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먹물의 `스며듦`과 `여백`의 여유로움을 서양화에서는 볼 수 없다는 뜻이었다.
박 화백은 “한국은 신라 때 솔거가 당나라의 밀타성 화법을 전수받아 일찍이 황룡사 금당벽화 `노송도`를 그렸지만 한국에서도 유화보다 선으로 볼륨, 광선과 입체감을 살리는 먹그림이 발전했다”며 동양화의 미래를 밝게 내다봤다.
70세 고령임에도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바로 기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천주교 신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평화의 시간은 하느님과 마주 할 때”라며 자신은 매일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그는 이번 개관전에 나온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2천 호 초대형 작품인 `솔거의 노래`를 꼽았다. “소나무는 나무 중 그리기 어려운 그림이다. 나는 우리 정서를 대변하는 대표적 자연이라 표현한다”고 했다. 이어 어릴적 집안 어른들로 부터 들었던 `새들이 진짜 소나무로 착각해 날아들었던` 극사실화가 솔거 이야기가 자기가 화가의 길을 걷게 한 시발점이 됐고 자신의 인생 자체가 소나무와 함께 살아온 삶이었다고 했다.
6·25 전쟁 때(4세) 고아가 됐고 또 왼팔을 잃고 의지할 데 없는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적막하고 고독한 인생여정 속에서 다행히 그림소질이 있어 독학으로 화업을 일궜지만 일생 꿈꿔왔던 이름 석자를 내건 `박대성 전시관`(솔거미술관 내)이 마련된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하는 박 화백. 그는 그림 앞에서 한 없이 가난하고 겸손했다.
초지일관 수묵화에서 중요한 필선(筆線)을 제대로 살리고 필력을 기르고자 평생 글쓰기에 힘을 쏟아 온 열정 만큼 이제는 “후학 양성을 위해도 힘쓰겠다”고 했다.
`박대성 화풍`은 참으로 독특하다. 사실과 추상이 적절히 어우러져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의 작품 앞에 선 관객들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큰 울림이 그림 속에서 풍겨져 나오기 때문이다. 미술관을 나서면서 어쩌면 그는 솔거의 환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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