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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硏의 `한양의 탄생`

등록일 2015-07-24 02:01 게재일 2015-07-24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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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란 바로 대신들이 모든 관청을 지휘하고 정치를 관리·감독하는 곳이니 그 중요성은 다른 관서와 견줄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서울과 지방의 사무를 전부 비변사에 맡기고 있다. (중략) 지금부터는 의정부와 비변사를 합하여 하나의 관청으로 삼는다.”

고종을 대신해 수렴청정을 하던 신정왕후가 1865년 내린 하교다.

비변사는 경복궁 광화문 앞 대로에서 500여년간 자리를 지킨 의정부, 육조와 달리 여러 차례 옮겨 다녔다.

16세기 중반 처음 관청이 생겼을 무렵에는 지금의 세종대로 사거리 부근에 있었고, 곧 남산으로 이전했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창덕궁 돈화문과 경희궁 흥화문 앞에 각각 청사를 설치했다.

한때 비변사가 궐내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폐지될 때까지 궁 밖을 떠돌았다.

그렇다고 궁궐 안에 관청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처럼 왕을 인문학적으로 보좌하는 자문기구는 궐내각사에 두기도 했다.

신간 `한양의 탄생`은 조선시대 도성 안에 있었던 다양한 관청을 집중적으로 살펴본 책이다.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가 엮은 첫 번째 `서울장소인문학 총서`로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 김문식 단국대 교수, 노경희 울산대 교수, 문중양 서울대 교수,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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