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문화유산답사기3` 이종호 지음 북카라반 펴냄, 356쪽
문화유산에는 그 지역과 민족 특유의 역사와 문화, 과학까지 총체적으로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도 세계를 압도할 만한 과학의 결정체인 문화유산이 많다.
이종호 한국과학저술인협회 회장이 과학으로 경주의 문화유산을 조명한 `과학문화유산답사기3`를 출간했다. <북카라반. 356쪽. 1만8천원> 저자는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페르피냥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공학 박사인 저자는 우리 문화유산에 담긴 과학의 원리를 풀어내고 있다. 1편 조선왕릉, 2편 전통마을에 이어 이번에 천년 고도 경주의 문화유산에 숨겨진 과학의 의미를 감칠맛 나게 풀어냈다.
◇ 천년 고도 경주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유산 가운데 경주는 다소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 석굴이 1차로 세계유산에 지정된 뒤 2000년 이를 포함한 경주시 전체가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세계유산에 지정됐다.
특히 경주는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은 도시다. 전 세계에서 1천년 이상 유지된 나라는 서양의 로마제국과 동양의 신라가 유일하다. 경주는 1천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경주 일원에는 신라 1천년에 걸친 다양한 유적이 산재되어 있다.
경주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7~10세기 절정을 이룬 불교예술이다. 하지만 경주에는 왕릉은 물론 왕성이나 산성도 있고 첨성대나 포석정지, 석빙고 등 과학유산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영역에 걸친 경주 일대의 유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경주를 8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서 주목해야 할 문화유산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그 유적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물론, 신비하게만 보였던 고대 유산에 숨겨져 있는 과학적 원리를 드러내 보여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뿐 아니라 위치나 접근성 때문에 배제되었던 유적,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 중인 유물까지 폭넓게 다루며 신라의 역사와 예술, 과학적 성취를 느낄 수 있도록 안내한다.
◇ 가장 한국적·과학적인 경주 문화유산
신라의 유적들은 예술적이면서도 과학적이다. 전반적으로 뛰어난 조형미, 섬세하고 귀족적인 아름다움이 있으며 그와 동시에 완벽한 기하학적 비례, 독창적이고 과학적인 제작 기법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다.
불국사에서는 동북아시아에서도 주로 우리나라 건축물에서만 보이는 그랭이 공법을 엿볼 수 있다. 그랭이 공법은 기준 돌의 형태에 맞추어 돌을 다듬어 쌓은 것으로, 백운교 좌우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천연 바위를 그대로 둔 채 장대석과 접합해 수평을 이루도록 했다. 이같이 어려운 작업을 채택한 것은 불국사가 상징하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은 시각 교정 등 정교한 건축 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기단 기둥을 보면 안쪽 기둥에 비해 바깥쪽 모서리 기둥이 약간씩 높다. 또한 기단과 탑신의 너비는 아래쪽이 넓고 위로 갈수록 좁다. 이것을 귀솟음과 안쏠림 기법이라고 부른다. 귀솟음은 중심 기둥과 모서리 기둥의 높이를 같게 할 경우 양쪽 끝이 중심보다 낮게 보이는 착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법이다.
석굴암은 우리나라 자연 여건에서는 불가능하게 여겨졌던 석굴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신라 예술가들은 산을 파 굴을 만들고 조각된 돌들을 조립한 후 흙을 덮어 석굴사원처럼 만드는 새로운 방법을 창안해냈다. 인공으로 구축된 석암에 예술적으로 조각된 불상들이 배치된 곳은 전 세계적으로 오직 석굴암뿐이다. 인공 석굴은 고도의 축조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 포석정에 대해서는 유체역학적으로 와류(渦流·소용돌이) 현상이 생기도록 설계해 술잔이 사람 앞에서 맴돈다고 설명한다.
/정철화기자 chhjeong@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