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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충분조건

등록일 2015-06-16 02:01 게재일 2015-06-1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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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여성의 지위는 많이 낮다고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세계경제포럼(WEF)이 작년 8월에 발표한 `2014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42개국 가운데 117위를 기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성 평등 지수는 20위였다. 둘을 단순 비교해보면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성 평등 지수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 특히 남성이 지배적인 지위를 누리는 직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말로 늘 듣던 이야기를 영어로 듣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사실 나는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내가 여자라는 사실이 매우 불편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대학원 석사과정 첫 수업에서 한 교수님이 원탁에 앉아 있는 여학생들을 둘러보며, 공부도 중요하지만 결혼도 중요하다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하셨다. 수업 첫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왜 저런 말씀을 하시지 하는 의아함과 불쾌함이 떠올랐다. 이후 대학원을 다니면서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남자들은 가정을 책임져야 하지만, 여자들은 결혼하면 남편이 책임져주니까, 남자가 우선 취직되어야 한다, 혹은 여자와 함께 일하면 불편하다. 여자들은 가정생활을 핑계로 일을 남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내 하버드 지인 중에 한 사람에게서 또 듣게 된 것이다. 그녀는 최근 하버드 의대를 나와 의사 자격을 취득하였다. 그녀는 의사가 주로 백인 남성들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며, 남자 의사들이 여자 의사와 일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여자들이 가정 일을 핑계로 일을 남자들에게 떠넘긴다는 것이다. 또한 정년 보장을 받은 여자 부교수가 있는데, 의대 안에서 그 여교수는 주로 성적인 코드로만 회자될 뿐 매우 경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신의 여성성을 최대한 억압해야만 한 자리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기서 정년 보장을 받은 한국학 하는 여성학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결혼은 해도 괜찮지만 아이를 낳은 경우에는 정년 보장을 받은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있으면 학과에 대한 충실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물론 이것을 모든 여성학자의 경우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그녀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는 그렇다는 이야기인 듯했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듣노라면 한국만 아니라 미국도 여성에게는 가혹한 곳이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예로는 이런 것이 있다. 미국에 유명한 육상 선수로 `브루스 제너`(Bruce Jenner)라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1976년 올림픽 게임에서 육상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이 시절 그는 매우 잘 생기고 근육질의 남성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 사람은 `카이틀린 제너`(Caitlyn Jenner)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아마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이 Caitlyn이 왠지 여자 이름 같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성기` 제거만 하지 않았을 뿐 트랜스젠더로서 살고 있다.

이 사람이 하는 말에 따르면 자신이 브루스로 살아갈 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여자일 때 기대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브루스일 때는 주로 자신의 능력이나 성격 등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카이틀린이 된 후로는 외모가 주된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여성의 예쁜 외모와 좋은 성격은 결혼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에서도 긍정적인 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에게 사회가 바라는 것이 단지 이것뿐이라면 나는 매우 절망스러울 것 같다. 여성이기를 강요하면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경제적, 사회적 성취 혹은 경쟁의 장에서 여자들을 배제시키는 이런 이중성은 이제 그만 없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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