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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목만이 아닌 실질적 융합학문을 기대하며

등록일 2015-05-26 02:01 게재일 2015-05-2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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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교수

한국 대학에서 요새 유행하는 용어로 `융합`이라는 것이 있다. 서로 다른 분야의 학문들을 결합 하는 학제 간 연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온 것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융합`이라는 단어가 학제 간 연구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 `융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주도하는 쪽은 주로 `공대`이다. 내가 재직 중인 단국대학교의 경우, 작년에 공과대학의 이름을 `융합기술대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하지만 실제로 한국대학에서 융합학문이라고 명백히 인지할 만한 학문 분야가 뚜렷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하버드 대학의 경우 `융합 학문`이라는 것의 의미를 뚜렷이 알 수 있는 학과들이 존재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하버드 의대에 있는 `bioinformatics and computing biology`라는 학과이다. “바이오인포메틱스(bio-informatics)”는 생물정보(공)학으로 번역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컴퓨터와 분석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생물학적 데이터를 얻고 이를 분석하여 생물학적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응용과학의 한 분야`이다. 1990년대 인간 게놈(genome) 염기서열이 판독하고 이를 정보, 처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로서, 하버드 대학교는 이런 염기서열 연구를 주도해온 대표적인 학교이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바이오인포메틱스는 이제 좀 더 실용적인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질병 정보를 모아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많은 환자들의 질병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함으로써 유사한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에 참고사항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달리 말해, 유사한 질병의 사례를 통계적으로 참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질병의 진단을 쉽게 하고, 유사한 증세의 환자들에게 잘 듣는 약들의 통계 자료를 구축함으로써 약 처방을 효과적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실제 바이오인포메틱스의 교수들을 살펴보면 의학과 함께 정보처리 분야에서 많은 경험과 기술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다.

`소셜 뉴로사이언스(Social Neuroscience)`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융합 학문의 하나이다. 보통 뉴로사이언스는 한국에서 `뇌 과학`으로 번역되고 있다. 뇌 과학은 뇌의 신경체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써 생물학의 한 분야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간 뇌의 신경체계를 인간의 사회적 행동과 연결시키는 학문이 발전하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응용생물학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주도하는 학자들은 주로 심리학자들이다. 이들은 뇌 공학에 기초하여 인간의 특정한 사회적 행동, 예를 들어서 도덕적 판단을 하거나 이타적 혹은 이기적인 행동을 할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 되는지를 뇌의 MRI 촬영을 통해서 확인하고, 그러한 행동이나 판단의 신경학적 원리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소셜뉴로사이언스는 법학자들의 관심도 받고 있다. 하버드 법대에서도 뇌과학자들을 불러서 연합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근대법은 인간의 자유의지(free will)이라는 것을 대전제로 성립된 법률 체계이다. 하지만 `뇌 과학`은 인간의 도덕 판단이나 행동은 신경학적인 원리에 의해 설명하려고 하며,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유의지`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처럼 상반된 전제 위에서 성립된 두 학문 영역이 만나서 서로 토론을 한다는 것은 범죄 심리를 좀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다루는 것에 대한 법학자들의 관심과 필요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버드 대학의 경우, `융합`이란 단어는 단순히 당대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수사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에 합당한 연구를 진행하는 학과와 연구 분야가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하버드에서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학부 때 다양한 전공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학과의 경계가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대학원 졸업 이후에도 자기 전공과 다른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제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런 분위기와 조건이 마련되어 `융합`을 실제로 실행하는 학과나 연구 영역이 실제로 한국 대학에서도 많이 생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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