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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부모님을 생각하다

등록일 2015-05-20 02:01 게재일 2015-05-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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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선애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 임선애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

5월은 유난히도 기념일이 많은 달이다.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스승의 날,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성년의 날, 부부의 날, 석가탄신일,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을 지나 바다의 날에서 끝이 날 만큼 많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 많은 이름 있는 날들 중에서도 가장 가슴을 울리는 날은 어버이날이다. 어린 시절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 하시네/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어머님의 은혜는 가이 없어라` (`어머니의 마음`(양주동 작사, 이흥렬 작곡) 1절)를 부르며, 눈물을 글썽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말을 모르는 몸뚱이가 세상에 편지처럼 도착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나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나를 어느 반지하방에서 혼자 낳았다. 여름날이었고, 사포처럼 반짝이는 햇빛이 빳빳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윗도리만 입은 채 방안에서 버둥거리던 어머니는 잡을 손이 없어 가위를 쥐었다. 창밖으로는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어머니는 가위로 방바닥을 내리찍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난 뒤, 어머니는 가위로 자기 숨을 끊는 대신 내 탯줄을 잘라주었다. 막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갑자기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적 속에서 귀가 먹는 줄 알았다.”

김애란 소설가의 `달려라 아비`(2004)의 서두 부분이다. 소설 속의 주인공인 `나`는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미혼모의 딸이다. 어느 반 지하방에서 혼자 끙끙대며 주인공을 낳는 장면은 어머니의 회상이 바탕이 되었을 테고, 갓 태어났을 때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주인공의 상상력이 가미된 짐작의 서술이리라. 작가의 서술대로 출산의 고통은 죽음의 경지에 비유되어 숨이 끊기는 순간을 연상시킬 만큼 큰 것인데, 자녀를 출산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이런 고통을 거뜬히 견뎌내고 자녀들을 낳고 기른다. 주인공은 갓 태어났을 때의 느낌을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들리지 않자 정적 속에서 귀가 먹는 줄 알았다`고 서술한다. 세상의 누구도 자신이 태어났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신기하게도 문학적 상상력으로는 가능한 일이고, 너무도 그럴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라는 데 고개가 끄덕여 진다.

어머니와 태아는 한 몸으로 있다가 분리되는 것이 출산에 대한 과학적 정의일 것이다. 이때의 분리는 단순한 분리가 아니라 관심과 사랑으로 연결되는 분리이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유쾌한 성격의 소유자로 주인공을 밝게 길러낸다. 주인공 `나`는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서도 자신을 세상에 나오게 해 준 아버지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고 나서, 그들을 남겨 둔 채 떠나버린다. 주인공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는 것이 아니고 유쾌하게 상상한다. `내게 아버지를 상상할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아버지가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뜀박질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버지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에 여위고 털 많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무릎을 높이 들고 뛰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규칙을 엄수하는 관리의 얼굴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내 상상 속의 아버지는 십 수 년째 쉬지 않고 달리는데, 그 표정과 자세는 변함이 없다`

김애란 작가는 주인공 그녀의 슬픈 가족사를 지나치게 유쾌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더욱 가슴이 아파지게 된다. 이렇듯 부모님은 좋고 나쁨의 잣대로 선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고, 우리와 하나로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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