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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버리고 싶은 자식의 마음

등록일 2015-05-08 02:01 게재일 2015-05-08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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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연화 화가·중원대학교 교수

필자가 건강상의 문제로 가까운 병원에 입원치료를 하였는데 많은 노인 분들이 병실에 누워 계신다. 부모님을 뵈러오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 등 가족들의 면회 모습을 보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말씀드리고자 한다.

어느 날 아들과 딸로 보이는 부부가 병원 복도 구석에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는 늙은 할머니(모친)에게 따지는 장면을 보고 참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인즉, 왜 엄마는 시키는 대로 안했냐?는 것이다. “숫자도 이름도 나이도 기억 안나고 무조건 모른다고 그래라 했잖아.” 그래야 치매등급을 받아 요양병원에서 혜택을 받는다고 야단친다. 그리고 집도 내 놓아서 갈 때도 없다고 호통을 친다. 조사원에게 모친은 거짓말을 못하는 성격으로 자식이 수차례 단단히 타일렀건만 사실대로 정확히 대답했다고 한다.

얼른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 버리려는 아들과 딸의 마음이다. 이게 현실이다. 국가가 독거노인을 지원해주는 제도의 허점을 잘 이용하는 사례들이 너무 많다. 홀로 집 나와서 가족과 연락 안 된다, 수입 없다며 거리에 나돈다면 노인들은 국가의 혜택을 받는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를 쫓아내도 걱정이 없다. 부모도 자식과 불편하면 쉽게 집을 나온다. 이러한 제도를 잘 알기 때문이다.

또 다른 풍경 하나. 어느 막내아들이 시골에 있다는 이유로 인근의 요양병원에 모친을 입원시키고 매일 출퇴근하며 돌보고 있다. 그리고 당연하다며 모친의 걱정에 온갖 지혜를 동원하여 보살피려함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형들을 원망한다. 서너 달에 한 번 들리면서 올적마다 동생한테 왜 엄마가 이렇게 몰골이 엉망이 되도록 뭐했나, 좀 잘할 수 없나며 나무란다는 것이다. 하기야 일 년에 한두 번 부모님 병실을 찾는 자식들도 수두룩하다고 하고 죄를 진양 후다닥 가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까운 이웃집 한 청년이 노모를 모시고 사는 에피소드도 요즈음의 세태를 절감하게 한다. 어느 날 노모는 자식이 연락도 안 닿고 집전화도 끊어져 자식의 소식을 알 길이 없다며 이웃을 통해 필자에게 연락이 왔다. 이유인 즉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 통장의 모은 돈이 자식의 휴대폰 요금 등으로 다 빠져 나가고 전화요금이 밀려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두 푼 품삯으로 모은 돈도 그 40대의 철없는 자식이 다 쓰고 없애는 모양이다. 그래도 노모는 하루종일 자식의 소식을 기다리며 불통의 전화기만 매만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어머니와 친한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종이 박스를 주워 팔아서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오고 갈 곳 없는 딸아이 하나를 데려다 키우고 공부시켜 시집을 보냈다. 하지만 딸은 엄마가 길에서 종이, 고물이나 주워가며 사는 것이 못 마땅해서 일방적으로 양로원으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그 할머니는 종이를 줍고 이웃과 이야기하며 평생을 그렇게 살다보니 체질에 안 맞는 양로원생활이 지옥과 같았다. 하루하루가 바깥이 그립고 손자손녀를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다. 주위로부터 늘 백수를 하시겠다고 들었던 그 할머니는 그만 시름시름 하다가 짧은 양로원 생활을 접고 생을 마감했다.

요즈음 부모를 모시기 싫어하는 젊은 층이 늘면서 고령층의 빈곤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부모와의 경제적 갈등과 간섭, 일방적인 행동이 못 마땅하고, 늙은 모습이 보기 싫고, 하는데서 갈등의 틈이 생기고 결국 한 집에 부모님을 모실 수 없는, 그런 상태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는 자식, 손자의 걱정과 그리움으로 하루를 살고 있다. 앉으나 서나 자식 걱정이다. 당신이 못 입고 굶어도 자식새끼 굶는 것은 가슴에 한이 맺힌다. 자식이라면 그 빚만큼은 갚아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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