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올 것 같은 오월이 왔다. 만남이 있어 행복한, 행복 할 수 있어 감사한, 감사하기에 고마운 5월. 근로자의 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세계 공정 무역의 날, 유권자의 날, 입양의 날, 자동차의 날, 식품 안전의 날, 스승의 날, 세계 가정의 날,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 성년의 날, 발명의 날, 세계인의 날, 부부의 날, 석가 탄신일, 방제의 날, 실종아동의 날, 바다의 날, 금연의 날. 마치 세상 모든 날이 5월에 모인 듯 참 많은 기념일이 있다.
계절의 여왕이어서 그런지 일벌들이 여왕벌에게 몰려들 듯 많은 날들이 5월에 몰려 있다. 일벌이 여왕벌과 그 무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치듯, 5월에 몰려 있는 많은 날들도 희망찬 사회 건설을 위해 결사항쟁의 의지를 보이는 듯 하다. 그걸 우리는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다. 명명철학이란 수필에서 글쓴이는 “우리에게 있어서 그 이름을 안 다는 것은 그것의 태반을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참으로 이름이란 지극히도 신성한 기호다.”라고 했다.
이름이란 그 대상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언어 형식이다. `어린이 날`은 말 그대로 어린이를 위한 날이고, `금연의 날`은 금연을 위한 날이다. 그런데 이런 이름이 생겨난 것은 왜 일까. 이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우선 대상에 대한 특징을 세세히 분석한다. 그리고 그 특징들을 아우를 수 있는 단어를 찾거나, 만든다. 그 이름이 사회적 공감을 얻으면 그 대상은 무의함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존재로 다가 온다.
그런데 이름은 꼭 구체적인 사물이 있어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도 그것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의해서 만들어 지기도 한다. 5월의 많은 날이 이에 해당한다. `어린이 날`의 유래를 보자. `어린이 날`은 소파 방정환 선생의 주도로 우리의 꿈과 희망인 어린들의 행복을 위해 제정되었다. 그런데 만약 어린들이 행복하게 살았다면 `어린이 날`이 만들어졌을까. `어버이, 스승의 날` 또한 마찬가지다. 부모와 스승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면 결코 이런 날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기념일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그 날에 해당하는 가치나 의미가 퇴색되었거나 부재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식품 안전의 날`, `실종 아동의 날`이 왜 생겼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바다의 오염이 심각하기에 `바다의 날`이 제정되었고, 금연에 대한 절실함이 크기에 `금연의 날`이 생겼다.
명명(命名)과 관련해서 우리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잘 기억하고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중략)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 (중략)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지금 우리나라를 보고 누군가가 기념일을 더 만든다면 어떤 이름의 기념이 만들어질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사회 각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기념일이 먼저 떠오른다. 정치와 관련해서는 `상호 비방 금지의 날`, `뒷거래 절대 금지의 날`, `신뢰의 날`, `상호 존중의 날`이, 경제와 관련해서는 `갑을 상생의 날`, `갑질 금지의 날`, `파업 금지의 날`이, 그리고 교육과 관련해서는 `각종학교 차별 금지의 날`이!
일 년 중 그나마 유일하게 모든 가족들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5월 둘째 주 필자는 각종학교 학생들이 “잊혀 지지 않은 하나의 눈짓”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몽골에서 해외이동수업 2차 사전답사 중이다. 5월 푸른 이야기들이 세상을 더 푸르게 만들기를 푸른 물들기 시작한 몽골에서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