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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비밀병기?

등록일 2015-03-31 02:01 게재일 2015-03-3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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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

미국 동부의 보스턴-케임브리지 지역은 하버드, MIT, UMASS 등 유명한 대학이 많다. 학벌을 몹시 밝히는 한국인이다 보니, 이 지역에도 많은 유학생들이 있다. 유학생들 중에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귀국하여 교수가 되거나 대기업에 취직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미국 취업 후 이민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도 많다. 취업 시 평균 10만 불부터 시작하는, 미국의 엔지니어 연봉은 한국 기업의 연봉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난다. 또한 한국과는 다른,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는 듯한 직장 분위기도 한국 졸업생들이 미국 기업 취업을 선호하게 한다.

그런데 2007년 말 미국의 금융 위기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미국 내에서는 세금을 내지 않는 불법 이민자들을 제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래서 제2기 오바마 정부는 `이민 개혁법`을 추진하였는데, 그 주요 쟁점 중 하나가 전문직(H1B) 비자의 발급 요건을 까다롭게 해서 취업 이민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2013년 5월 말 이민 개혁 법안을 심사해온 상원 법사위원회는 전문직 비자 발급 요건을 애초 안보다 완화하는 선에서 합의점을 찾았다. 즉, 전체 직원의 15%를 넘지 않는 선에서 기업의 H1B 비자 발급 신청을 허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 의회가 H1B 비자의 발급 요건을 완화한 이유는 2011년 한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본계 미국인 과학자인 `미치오 카쿠`의 발언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의 과학 교육이 붕괴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과학 기반이 경쟁력을 잃지 않는 이유는 “H1B 비자라는 비밀병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극단적으로, 그는 H1B 비자가 없으면 구글(google)이나 실리콘벨리(Silicon Valley)도 없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실제로 실리콘벨리에는 인도, 중국, 한국, 그리고 유럽 출신의 엔지니어가 다수라고 한다. 내가 아는 선배 오빠도 이민 목적으로 미국 대학에 유학을 가서 실리콘벨리에서 직장을 얻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죽 써서 개 준다`는 속담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나라의 엄청난 교육 열풍의 과실이 미국의 실리콘벨리를 살찌우는 데 쓰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교육부가 통계청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2014년 초.중.고 학생의 1인당 월평균 명목 사교육비는 약24만 원이었으며, 연간 총 사교육비는 약 18조 2천억 원이었다.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경고가 울리는 중에도 우리나라 부모의 돈지갑은 최소한 사교육에 대해서는 `화수분`인 것처럼 보인다. 이런 덕분인지 우리나라 중, 고등학생들은 세계수학올림피아드에 가서 1~2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처럼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들여 키워낸 우수한 학생들은 많은 경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런데 이 인재들은 미국에서 박사 졸업장을 따게 되면 우선적으로 미국 기업에 취업을 하려고 하고, 실제로 하는 경우가 많다. 한 때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한국식 교육의 우수성을 칭찬하기도 하였다. 주입식이던 어쨌든 한국의 교육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수학, 과학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키워서, 미국 사회에 그대로 갖다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은 부모 등골을 빼먹으면서 길러진 한국의 인재들을 아주 적은 사회적 비용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나 정가에서는 외국에서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할 수 있도록, 우수 인재 이민 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외국의 우수 인재들을 받아들여 우리 산업 발전에 활용하면 좋다. 하지만 이보다 더 쉬운 방법은 우리나라 인재를 외국으로 유출시키지 않는 것이 아닐까?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에게 좀 더 좋은 연봉과 생활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우수한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기업에서 일하게 하는 것이 우리 경제를 더욱 발전시키고, 소위 `국부 유출`을 막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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