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삶을 위하여!

등록일 2015-03-20 02:01 게재일 2015-03-20 19면
스크랩버튼
▲ 김진호 편집국장

“사는 게 뭔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사나?”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된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에게 던져온, 해답없는 질문이다. 젊은 시절, 부단히 자신에게 물어보고, 책에도 물어보고, 친구·동료·선배들에게 물어봐도 답이라 할 만한 얘기를 들어보지 못한, 바로 그 질문이다. 이제 불혹(不惑)은 물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지난 요즘 내게 다시 찾아온 질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법륜 스님이 쓴 `인생수업`이란 책을 보다가 공감한, `답 아닌 답`을 만났다.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이 질문에는 답이 나올 수가 없다. 삶이 `왜`라는 생각보다 먼저이기 때문이다. 즉,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으니 생각도 하는 건데, `왜 사는 지`를 자꾸 물으니 답이 나올 수가 없다.”내 답답한 가슴과 머리, 그리고 질문의 핵심을 한번에 꿰뚫는 말이었다. 존재가 사유보다 먼저 있었다니….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있었다. 한국사람이 되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이미 한국사람이 돼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한국사람이 됐지?`이렇게 물으면 답이 나오지 않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자꾸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이렇게 삶의 의미도 모르고 살아서 뭐 해.`하는 염세주의에 빠져 자살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져들게 되기도 하는 게 사람이다.

그래서 스님은 이렇게 제안한다. 생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메뚜기도 살고, 다람쥐도 살고, 토끼도 사는구나. 나도 살고, 저 사람도 산다. 모두 살고 있는 데, 어떻게 사는 게 좋은 걸까? 괴롭게 사는 것 보다는 즐겁게 사는 게 좋다. 그럼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까?`이미 살고 있는 존재로서 이렇게 생각하는 게 건강한 사고방식이라는 것이다. 내가 살고 싶어서 살고, 죽고 싶어서 죽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삶은 그냥 주어졌고, 때가 되면 그냥 죽는다. 결국 삶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괴로워하며 살 것인가, 즐거워하며 살 것인가의 문제일 뿐이다.

스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사나?”질문속에 `나는 특별하다`는 생각이 숨어있다고 꼬집었다. `나는 특별하다. 그러니 특별한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못해서 괴롭다.`이 세상 사람 누구라도 자기 자신이 소중하고 특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고은 시인은 “나란 존재는 빅뱅이요, 우주의 중심”이라고까지 했다. 내가 없으면 우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내 자신의 삶이 특별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삶은 특별하고, 아름답다. 그렇다. 삶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이 보는 어떤 이의 삶은 아름답고, 어떤 이의 삶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게 없다. 모든 이의 삶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거룩하고, 축복할 만한 기적이다.

`레이첼 나오미 레멘`이 쓴 베스트셀러 `할아버지의 기도`란 책에도 이런 구절이 나온다.

외할아버지는 건배할 때면 늘 잔을 부딪치며 히브리어로 `레치얌`하고 외쳤다. 히브리 말로 `삶을 위하여`라는 뜻이라고 했다. “할아버지, 행복한 삶을 위하여라는 거예요?”“아니, 그냥 삶을 위해서 라는 뜻이란다.”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레멘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기도문 같은 거예요?”“아니란다.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은 어떤 것을 청하느라 기도하지. 그러나 우리는 이미 생명을 지니고 삶을 살잖니. 레치얌은 우리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부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삶은 거룩한 것이며, 서로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미란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유대인들은 포도주를 마실 때 `삶을 위하여`라는 뜻의 `레치얌`이란 말을 건배사로 외쳤다. 이처럼 상실과 고통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것인지를 절절히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기적같이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건배하자. 레치얌!

김진호의 是是非非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