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세컨드 윈드

등록일 2015-03-06 02:01 게재일 2015-03-06 19면
스크랩버튼
▲ 김진호 편집국장

스포츠에는 감동이 있다. 인간승리의 순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일게다.

지난 주 한국에서 태어나 두 살 때 미국에 이민 간 재미동포 골퍼 제임스 한(34·한국명 한재웅)의 미국PGA 우승 소식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의 우승소감은 소박하고 따스한 인간미가 넘쳤다. “대회 우승보다 아버지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흥분된다”고 말한 그는 “이번 대회에서 받은 상금으로 앞으로 몇 주일간 기저귀를 많이 살 수 있을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그는 이번 대회 우승으로 우승상금 120만6천달러(약 13억4천만원)와 함께 2년간 투어 카드, 올해 마스터스 출전권을 함께 따냈다.

제임스 한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앨러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미국학과 광고학을 공부했다. 2003년 대학 졸업 후 약 3개월간 짧은 프로 골퍼 생활을 했지만 통장 잔고가 바닥나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프로 골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회참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신발가게에서 신발 판매·유통·고객 응대 업무를 하며 돈을 모았다. 캘리포니아 리치먼드 골프장에 있는 골프용품 매장에서도 일했다. 2007년에는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활동하다가 2008~2009년 캐나다 투어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특히 2008년 캐나다 투어에 출전하던 때를 잊지 못한다. 에드먼턴에서 열린 대회에 출전한 그의 주머니엔 200달러(약 22만원)도 채 남아있지 않았다. 대회가 끝난 뒤 캐디에게 지불해야 할 임금과 집으로 돌아갈 비용조차 없어 누구에게선가 돈을 빌려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대회를 치르면서 밤에는 컴퓨터 앞에 앉아 구직사이트를 뒤져야 했다. 그러다 그는 “문득 언젠가는 내 인생에 기회가 올 것이란 울림이 있었다. 한편으론 친구들과 어울리고 주말에 파티를 즐기느라 모든 것을 골프에 쏟아붓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을 돌아본 그는 그 대회에서 8위에 올라 상금 3천달러를 받았다. 당시엔 그 돈이 100만달러 보다 더 크게 여겨졌단다. 그 이후 그는 2009년 미국 PGA 2부 투어인 내셔널와이드 투어 출전권을 따냈고, 2013년 PGA 투어로 올라섰으며, 대회 65번째 출전만에 생애 첫 우승의 꿈을 이룬 것이다.

삶에 대해 긍정적인 사고를 하라고 주문할 때 흔히 물컵의 비유를 든다. 물이 반 정도 남은 물컵을 보고 긍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이나 남았다”고 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물이 반밖에 안남았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할 때 더 중요한 것은 남아있는 물의 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아니라 물이 줄어들고 있는 지, 늘어나고 있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이 늘어나고 있다면 컵 바닥에 물이 조금밖에 없어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점점 늘어나 마침내 컵에 물이 가득 찰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주 힘든데 단순히 생각만 바꿔서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황이 아주 힘들더라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인지 아닌지를 봐야한다. 당신의 삶은 어떤가. 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나, 아니면 물이 줄어들고 있나.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42.195km를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세컨드 윈드가 찾아온다. 숨이 끊어질 듯 하고, 옆구리가 당기고 가슴이 아프다. 세컨드 윈드의 증상인 데, 그 순간만 지나면 편안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노련한 마라토너는 숨이 멎을 듯한 세컨드 윈드가 찾아오면 기뻐한다. 호흡이 안정되기 직전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이 순간이 바로 세컨드 윈드일 수 있다. 당신의 현실이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상태라 해도 그것이 세컨드 윈드라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한번 힘을 내보자. 그럴 때 꿈은 이루어진다.

김진호의 是是非非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