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 악화와 관련해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은 3월에 만료되는 대(對)러 제재조치를 6개월 연장하기로 합의했지만 새로운 제재안을 마련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편 유럽의회는 러시아 기업의 국제금융 거래제한과 에너지 부분 제재확장을 결의했다. 새로운 대(對)러 제재조치 적용 움직임에 러시아는 `경제협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서방의 지속적인 대 러 제재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나?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이 러시아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한 점이 눈에 띤다. 그리고 해외자본들이 루블화 자산을 파는 일이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대 러 제재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유럽연합에 맞서는 차원에서 그리스에 금융지원을 검토하고 있다. 뜬금없이 웬 그리스냐고? 유럽연합이 대 러 제재를 연장하고 더 강화하려면 유럽연합 회원국인 그리스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상황을 틈타 그리스는 `러시아와의 동맹`으로 대외채권단인 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국제통화기금을 압박하며 `부채탕감`과 `구제금융 재협상`을 시도하고 있다. 러시아는 `그리스와의 동맹`으로 유로를 국가통화로 쓰는 나라들 간에 갈등을 조장하며 유럽연합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러시아는 이참에 `아시아와의 경제통상 확대`도 모색하고 있다. 러시아에게 아시아란 석유와 천연가스, 금속 등 러시아 주력 수출상품 소비시장으로 인식된다. 또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지정학적 공간`으로도 인식된다.
서방의 대 러 제재로 유럽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러시아는 `야말 LNG 프로젝트`를 연결고리로 해서 아시아 천연가스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이 프로젝트야말로 러시아가 아시아 에너지 수요 증가를 충족시키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야말 LNG 프로젝트`는 2017~2018년 사이에 야말 반도의 천연가스를 채취해 생산·수출하는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러시아 최대의 민영기업 노바텍(60%), 프랑스토탈(20%),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20%) 등이 공동으로 설립한 `야말 LNG`가 담당한다.
이 프로젝트를 주목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프로젝트로 생산되는 총 용량의 90% 수요자가 아시아 국가로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서방의 대 러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아시아 시장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는 올해에도 중국과 또 다른 가스공급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다른 한편 러시아는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을 통해 한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길 원한다. 그리고 동북아 물류허브가 될 나진항 개발 사업에 한국, 중국, 몽골을 비롯한 주변국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러시아의 움직임은 `아시아 에너지 시장 개척`과 `아시아와의 경제통상 확대`라는 큰 그림에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나진·하산 물류사업,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를 잇는 사업, 북한의 나진·선봉 경제특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전력망을 개선하는 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일들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남·북·러 3각 협력의 활성화로 남북관계 정상화가 이뤄져야만 한다.
대한민국 호(號)는 경제를 위해서는 중국과 협력하고, 군사·안보를 위해서는 미국과 긴밀하게 공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을 잘 잡아나가야 한다. 나아가서는 서방의 대 러 제재라는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정세 하에서 남·북·러 3각 협력의 활성화와 능동적 통일준비에도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우리에게 러시아는 필요할 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
러시아를 지렛대로 삼아 우리가 유라시아 경제·외교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세계평화정착의 대전환점을 마련하는 남북통일`을 어떻게 완성해서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만 한다. 그런 고민을 통해 구체적 실행계획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