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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꿰뚫는 말

등록일 2015-01-23 02:01 게재일 2015-01-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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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중국 고전인 열자(列子)의 `황제편`에 조삼모사(朝三暮四)란 고사성어가 나온다. 중국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내자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에는 세 개를 주겠다고 바꾸어 말하니 기뻐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즉,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교활한 꾀를 써서 남을 속이고 놀리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고사성어가 `증세없는 복지`를 내세우며, 연말정산 방식을 바꿨다가 `13월의 세금폭탄`논란을 일으킨 여당과 정부를 꼬집는 말이 되고 있다. 지난 2013년 소득세법을 개정하면서 연말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방식으로 변경하는 바람에 올해 보험료, 신용카드, 교육비, 의료비 등 직장인 연말정산의 `4대 공제항목`공제액이 6년전에 비해 13.4% 줄어들 것으로 추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소득 중·상층에 대한 공제가 줄면서 사실상 증세가 이뤄지자 급격한 민심이반이 일어났고, 심각성을 느낀 여당과 정부가 수습에 나서 공제액을 상향조정하는 보완책과 함께 소급적용이란 고강도처방을 내놓은 형국이다.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여당과 정부는 새로운 고민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증세없는 복지`를 고집하는 게 옳으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정공법으로 증세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 핵심 당직자는 아예 “증세없는 복지라는 말은 위선적 표현”이라며 “깎아주던 것을 원상복구하는 것도 증세인데, 정부에서 증세가 없다고 하면서 증세를 하니 문제”라고 혀를 찼다고 한다. 정책위 관계자도 “복지수준이 이대로 계속 증가한다면 소득세나 법인세 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지만 그것은 경기에 직격탄이고 모든 국민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언젠가 증세냐 복지냐를 이야기해야 할 날이 올 수밖에 없다”며 원론적 차원에서 증세논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나섰다.

야당은 야당대로 총선을 1년 앞두고 연말정산 파동이 터지자 여당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박 대통령과 최 부총리를 거론하며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고 기재위 차원의 청문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재위 야당 간사인 윤호중 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가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 의도를 숨기려고 국회와 국민을 기만한 것”이라며 “이 부분에 대해선 정밀한 검증과 조사와 청문회가 있어야 하고 더 필요하면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삼모사의 방책으로 국민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말과 글은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구사할 때 힘을 발휘한다.

꽃이 만발한 파리의 어느 봄날, 노트르담 대성당앞에 한 눈먼 거지소녀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소녀는 `저는 눈이 멀었습니다. 한 푼 주십시오`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앞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다들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그러던 중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는 푯말 문구 밑에다 한 마디를 더 써주고 갔다. 그러자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소녀에게 다가와 돈을 주면서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지나는 사람에게 소녀가 물었다. “여기에 뭐라고 썼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이는 건가요?” 그 남자가 덧붙인 한 줄의 문장은 이랬다. `나는 당신들이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봄을 보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본질은 `사람`이다. 사람들은 눈먼 소녀를 구걸하는 `거지`로 보았지만 그 남자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봄의 아름다움을 눈이 멀어 누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했고, 이를 한 줄의 시처럼 표현해 지나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본질을 꿰뚫은 글이 힘을 발휘한 일화다.

우리 정치가 본질을 꿰뚫는 말과 글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발휘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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