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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권리

등록일 2015-01-22 02:01 게재일 2015-01-22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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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락 경주 청하요양병원장·수필가

자유당 정권 때만해도 산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살았다. 청송과 안동 경계선에서 살던 어린 시절에는 지금은 희귀하게 되었지만 산에서 토끼나 꿩, 늑대, 노루, 산돼지, 심지어 여우까지도 마주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냇가에서는 낚시로 물고기를 잡기도 하고 논도랑에서 소쿠리로 미꾸라지를 잡아서 저녁 반찬으로도 먹었다. 가을에는 메뚜기를 잡아서 볶아 먹었던 것도 지금 생각하면 낭만이었다.

지난날 사람들은 대체로 친 환경적인 삶을 살았다. 1년 동안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간혹 잔칫집에 가서야 고기 맛을 조금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이런 삶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나라의 생활수준이 향상되면서 국제화로 발전하고 있다. 그에 따라 경제 규모도 커지고 대량으로 죽여서 좋은 영양분을 많이 먹을 수 있게 됐다. 아직도 동물의 단백질은 미국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비교적 넉넉하게 섭취하고 있다.

근래에는 독하고도 괴상스런 병이 자주 세계를 휩쓴다. 그것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서도 태풍이 몰아치듯 곳곳에서 일어난다. 인간에게 에볼라 출혈열, 짐승에게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 같은 병이 좋은 예이다. 이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뒤따라오기 마련인 발전의 후유증인 것 같다.

눈도 코도 없는 병균은 인류의 지(知)적 산물의 출현에 동승해 새롭고도 독한 신종 병을 만들어 낸다. 이 현상은 `지식 발전이 빠르면 빠를수록 신종의 병도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의 근육을 많이 먹음에 따라, 새로운 병이 더 자주 출현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폭발적인 질병의 발생이 겁이 나서 가축을 대량으로 땅에 묻어버렸다. 이를 매몰처분이라 하지만, 이는 엄연히 대량 학살이다. 20세기에는 인간을 대량 학살 했었는데, 21세기에는 동물들이 한꺼번에 수 천만마리가 죽어나간다. 아무리 인간들이 하는 짓이지만 수 천만마리를 땅에 묻었다고 하면, 인류도 언젠가는 당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단, 지금부터 반성을 하면 미래의 재앙을 수그러들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에도 한 번 글로 발표한 적이 있지만 체중이 60kg인 사람은 60gm의 단백질이 하루에 필요하다(체중1kg에 1gm씩). 보통 정도 운동을 한다면 120gm(2배), 심한 노동을 하는 사람은 180gm(3배)의 단백질이 필요하다. 작은 달걀 1개는 60gm이 넘는다. 된장 등 콩을 먹으면 1개보다 더 적게 먹어도 60gm을 채울 수 있다. 그러나 저녁에 회식에서 우리는 200gm이상의 고기를 먹는다. 그러고는 `꾸룩` 트림을 하면서 정신없이 집으로 간다.

산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산을 많이 깎아서 도로를 정비했다. 이러면 절벽이 만들어 져서 옆의 산으로 가지 못하기에 짐승들이 이동 폭이 좁아진다. 동물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길의 일정 부분을 터널식으로 만들거나 길 위에 통로를 다리모양으로 넓게 마련해 줘야 한다.

만물은 지구위에 있는 원자들이 모여서 만들어 진다. 짐승의 몸도 분해되면 나의 몸의 일부가 될 수 있다. 물체는 순환하는 것이고 그 근원은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들이 최고인양, 자기들은 특별한 양, 동물의 생명을 마구 대량으로 학살시키면서도 아무도 그 행위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동물의 대량살상이 인간의 법으로는 별 문제 없을지 모르지만 조물주의 입장에서는 `탐욕 증`이라는 정신병에 속한다. 동물도 자기들 생명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야 한다. 동물도 권리가 있다. 종교 분야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둔감한 것 같다.

짐승은 인간의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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