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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냥 빚 갚는 말

등록일 2015-01-09 02:01 게재일 2015-01-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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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백화점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리고, 마트에선 직원을 폭행하는 일부 소비자의 `갑질`행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모 방송사 저녁뉴스에 소비자의 친절을 유도하는 마케팅이 보도돼 화제다.

환한 미소와 함께 “경진 씨,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하면서 커피를 주문하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흔치 않은 풍경이 이어진 것은 존댓말로 주문하는 손님에겐 커피값의 20%를, 명찰을 보고 직원 이름을 부르며 따뜻한 말을 건네면 50%를 깎아주는 이벤트 행사 때문이었다. 무뚝뚝한 말로 주문하면 50% 할증요금을 받는다는 대목에 이르면 마냥 웃을수 밖에 없다. 직원도 손님도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손님들도 “직원분이 웃으시니까 저도 재미있고,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게 돼요.”라며 호의적이다.

친절에 관한 유머도 있다. 옛날 시골 장터에서 박씨성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고기를 팔고 있었다. 하루는 젊은 양반 둘이 고기를 사러왔는 데, 가게에 먼저 들어선 양반이 “어이 백정, 고기 한근만 다오”하고 하자 “네, 여기있습니다”하며 고기를 내주었다. 두번 째로 들어선 양반은 어딘지 나이많은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기가 그래서 “거 박서방, 고기 한근 주시게”하고 반공대로 말했다. 그러자 역시 백정은 “네, 여기 있습니다”하며 고기를 내주는 데, 그 양이 먼저 양반보다 훨씬 많은 게 아닌가. 이를 본 첫번째 양반이 큰 소리로 따졌다. “아니 이놈아, 같은 한근인데 어찌 양이 이리도 차이가 나느냐”그러자 백정이 싱글싱글 웃으며 답했다. “아, 네. 그야 손님고기는 백정이 자른 것이고, 이분 고기는 박 서방이 잘랐으니까 그렇습지요”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말이다. 고운 말 쓰는 것은 종교를 불문하고 권장사항이다. 지난 연말 산행중에 들른 북한산 승가사 마당 게시판에는 이런 시가 걸려있었다. “자신을 비판한다고 공격적으로 응대하지 마세요/ 모든 다툼은 두 번째 응답에서 비롯됩니다.//마음이 넓은 사람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찍는 도끼에 향기를 뿜어냅니다.” 산사에 이는 맑고 청량한 바람 덕분인지 공감하는 마음과 함께 지난 한해 속좁은 사람이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홀로 반성하며 새해에는 향나무처럼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의 작품에서도 향나무 얘기가 이어진다. 그는 `의인은 향나무처럼 자신을 치는 도끼에 향을 바른다`는 제목의 작품에서 자신을 찍는 도끼날에 향을 발라 주는 삶을 예수님의 삶으로 비유했다. 이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 5장44절)는 성경구절과도 일맥상통해 설교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친절한 말은 어디서도 통한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으로 천년고도 경주를 `품격 있는 문화관광도시`로 만들겠다고 새해 포부를 밝힌 최양식 경주시장은 7일 신년인사차 본사를 찾은 자리에서 뜻밖의 고민을 털어놨다. “올해 경주 동궁원 옆에 `제2동궁원`을 조성해 체험관광 테마공원을 만들고, 신라대종 테마파크 조성과 신라 6부전56왕전 역사관 건립, 김유신 장군 옛집 복원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광인프라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 친절한 말쓰기 운동입니다.” 최 시장이 고심할 만큼 경주의 친절지수는 그리 높지않다. 지난 연말 한국은행 포항본부가 동북지방통계청과 협업으로 경주시 외국인 숙박관광객 실태를 조사한 결과 종사자의 친절성 항목에서 불만스럽다는 반응이 8.3%로 나타났다. 실제 경주지역 식당·택시 등 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의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말본새는 우려스럽다는 평가다. 최 시장은 이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언론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당부였다.

친절한 말 한마디는 손님과 서비스 종사자 모두에게 지켜야 할 덕목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옛말이 새삼스런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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