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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소회(所懷)

등록일 2014-12-26 02:01 게재일 2014-12-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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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어느 덧 한해가 저물어간다. 계속되는 송년회 속에 분주한 크리스마스를 지나며 문득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와 같은 명절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연말 송년회와 각종 모임이 겹쳐 일년중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는 게 보통이다. 아내의 한숨이 늘어날수록 가장이자 남편인 나와 여러분들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다. 더구나 경상도 사람들은 자녀들과 다정하게 대화하거나 소통하는 법을 잘 모른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이 사춘기로 뭔가를 고민을 해도 뭐라고 말을 붙여 위로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지 알지 못한다. 부모로부터 그런 방법을 따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녀들과 소통하는 법을 모르는 것은 사실 심각한 일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나 자신도 아이들과 그리 자주 얘기하지 못했고, 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벌써 막내가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됐으니 너무 늦게야 깨달은 셈이지만 지금이라도 이런저런 얘기로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안간힘을 쓰곤 한다.

동아일보 기자출신으로서 `(힘들어도 힘들다고 말할 수 없는) 남자나이 서른 아홉`이란 제목의 책을 쓴 김상훈 작가는 “우린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법을 배워야 한다. 가족 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가장의 소외는 가장스스로 자신을 가족과 격리시켰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생계를책임진다는 역할에만 매몰된 나머지 더 중요한 다른 역할들을 모두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면서 공감가는 얘기들을 제안했다. 아내를 CEO로 대접하자, 아내의 마음을 읽자, 아이에게 올인하지 말자, 가족에 군림하지 말고 즐겁게 어울리자 등의 조언이었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마음에 와닿는 조언은 `사랑으로 아이를 채우자`는 것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출신 아빠를 둔 내 아이들은 아빠를 멋없고, 화를 잘 내고, 권위적으로 지시만 하는 아빠로 기억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런 내게 그는 아이들이 성장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아빠`로 추억해주기를 바란다면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고 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아내의 잔소리에는 귀막았던 내가 뒤늦게 공감하니 반성!또 반성이다.

이번에는 아내얘기를 해보자. 나이든 부부에게 각각 물었다. 가장 필요한 다섯가지를 꼽아보세요. 먼저 질문을 받은 대다수의 부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돈, 딸, 건강, 친구, 찜질방의 순이었다. 서글픈 것은 다섯번째 안에 남편이 들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반면 대다수의 남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부인, 와이프, 집사람, 아내, 애들 엄마. 이런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나이든 사람들은 웃지않고, 숙연해지고 만다. 결코 웃기지 않는, 웃을 수 없는 진실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부부싸움은 흔히 `칼로 물베기`라지만 자칫 무심코 내뱉은 남편의 말 한 마디에 아내들은 큰 상처를 입는다.

부부관계는 남들은 알 수 없는 속사정이 많다. 이혼하는 부부가 늘어나자 부부관계를 연구하는 어느 연구소가 어떤 사람과 사는 부부가 가장 오래도록 함께 살까에 대해 조사했다. 여러분도 한번 대답해보시라. 첫째 콩깎지 쓰인 양 마냥 좋은 사람, 둘째 마음이 통하는 사람, 셋째 마음이 통할 뿐 아니라 대화가 잘되는 사람, 넷째 마음이 통하고 대화가 잘 될 뿐 아니라 헌신적인 사람 ….정답은 첫째 콩깎지 쓰인 사람과 사는 경우라고 한다. 생각해 보라. 서로에게 콩깎지 쓰인 부부는 서로 최고의 이상형과 함께 사는 것이니 다른 말을 해서 무엇하랴. 아무리 말이 잘 통하고, 헌신적이라 해도 사람의 사랑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있다. 내가 최고라고 믿는 바로 그 사람이 내게 제일 좋은 사람인 것이다. 이는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 마음의 조화(造化)다. 올 연말 가족과 함께 변함없는 마음의 조화를 누리며 즐겁게 새해를 맞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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