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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힘

등록일 2014-11-14 02:01 게재일 2014-11-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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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호 편집국장

`직장인 성공학`으로 유명한 김용전씨가 쓴 책,`출근길의 철학, 퇴근길의 명상`에 나오는 한 에피소드가 가슴을 울렸다. 절망에 빠진 사람을 일으켜 세우는 희망의 힘을 보여주는 일화였다.

2006년11월 추수감사절 연휴를 맞아 미국 오리건주 북서부 해안지대로 여행을 떠난 한 가족이 갑자기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 이들의 불행은 11월25일 목적지로 가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산길로 접어들면서 시작됐는 데, 고속도로로 빠지는 길을 놓쳐 겨울에는 폐쇄되는 험준한 국립공원 산악지대로 깊이 들어간 게 화근이 됐다.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아치는 눈보라로 눈이 1.8미터나 쌓이게 됐고, 결국 차가 움직일 수 없어 산속에 고립되고 만 것이다.

아버지의 이름은 제임스 김. 그는 한 인터넷 매체의 편집장으로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차가 오도가도 못하게 되자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걸었으나 산간지역이라 통화가 되지 않았다. 이들은 과자와 눈을 먹으며 구조를 기다렸는 데, 김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만 먹도록 하고 자신은 굶으며 버텼다. 처음 조난을 당했을 때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자동차의 시동을 켰다. 이후 자동차의 연료가 떨어지자 자동차의 타이어를 태웠고, 눈이 그칠 즈음에는 주변 나무를 구해와 불을 지폈다. 결국 갇힌 지 일주일이 되도록 구조대가 오지않자 그는 구조를 요청하러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다.

12월2일 오전 7시, 그는 6시간 정도 뒤에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혼자 눈보라속으로 길을 나섰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가족에게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가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키 높이의 눈속을 26킬로미터나 걸어나갔으나 방향감각을 잃고 돌아오다가 자동차에서 불과 800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숨졌다. 차에 남아있던 가족은 그 이틀뒤인 12월4일 모두 무사히 구조됐다.

김씨의 시신은 이틀이 지난 12월6일 발견됐는 데, 그의 곁에는 얼어붙은 손으로 `가족을 구해달라`고 쓴 종이쪽지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구조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일주일을 굶은 그 상황에서 눈속을 26킬로미터나 나갔던 것은 가히 초인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가 이런 초인적인 힘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 “나는 죽어도 좋다. 가족만은 구해야 한다”는 일념이었을 것이다. 그가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알고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 때 죽어가면서도 아버지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쓴 쪽지를 생각하면 저절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2006년 당시 관련 보도가 나가자 한 네티즌이 “그는 판단착오로 죽은 것이다. 안전한 차안에서 기다렸어야 옳다”고 해 논란을 일으켰다. 과연 그런 것인가. 결국 그가 사망했으니 결과론적으로는 맞는 말 같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가족을 훌륭하게 구해냈다고 믿는다. 음식이 다 떨어지고, 연료도 다 떨어지고, 태울 수 있는 것 마저 다 태워버린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이때 그가 용감하게 길을 나섬으로써 가족들에게 `아빠가 구조대를 데리고 올 것`이라는 희망을 줄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희망이 아니었으면 나머지 가족들이 어떻게 영하의 맹추위속에서 허기진 몸으로 이틀이나 더 버텨낼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아빠가 만들어 준 희망의 힘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톨스토이는 단편소설`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우는 부인을 보며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웅변했다. 마찬가지로 `절망에 빠진 사람은 무엇으로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가`를 자문해보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날씨가 차가운 13일 치러진 대학수능시험에서 바라는 성적을 내지 못해 실의에 빠진 학생, 수십통의 이력서를 쓰고도 취업에 실패한 구직자,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중도에 포기해버린 사람, 이런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희망의 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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