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떨어지고 가을의 정취가 깊어간다. 이럴 때 사람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이 음악이다. 필자는 평소 클래식을 즐겨 듣지만 이 계절에는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대중가요도 심심치않게 즐긴다. 그러던 중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J에게`란 노래로 대상을 차지했던 가수 이선희가 부른 `그중에 그대를 만나`란 노래를 만났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이 느꼈을 법한 사랑과 이별을 시적인 가사와 애절한 멜로디로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바란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로를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중략)…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되고/ 오~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 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를 만나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고, 그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평생을 함께 하는 것은 더 큰 기적이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듣고 난 이후 일주일 동안 틈만 나면 이 노래를 들으며 `사랑= 기적= 운명`의 등식을 곱씹고 있다.
다른 회사에 근무하는 후배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새로 만드는 신문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는 데, 보수나 대우를 좋게 해준다니 가고는 싶은 데 신생지인지라 미래가 불확실해 망설여진다며 조언을 구해왔다.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더 많은 보수를 준다니 과감하게 옮기라고 권하고 싶기도 했지만 그리 쉽게 할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신생지 가운데는 몇달 발행하지 않고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전례를 들며 “신중히 판단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내는 선에서 그쳤다. 어차피 결정은 본인이 해야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본인이 져야 하므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 좀더 근무하는 것보다 새 회사에서 새 길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적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신생지로 옮기는 게 위험하다는 걸 걱정하는 후배에게 무슨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으랴.
아들 얘기를 한번 더 해야 할 듯하다. 대중음악을 전공하며 록밴드를 하고 싶다는 아들의 마음을 간신히 돌려 다른 전공(예를 들어 음향공학 등)을 공부하면서 음악을 공부하도록 했는 데,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서 연락이 왔다. 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공부에 전념하게 해달라고 고집을 피운다는 것이다. 말을 물가로 데려갈 순 있어도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듯이 어쩔 도리가 없다 싶었다.
중년의 삶에 일어나는 이런저런 일들을 생각하면 어느 것 하나 간단하고 쉬운 일은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사람이나 일을 선택하든 그건 그 나름대로 또 하나의 삶이 될 것이란 생각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렇다. 후배들이 찾아와 인생의 선택에 대해 물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답해주는가. 사실 남의 사정을 구구절절히 어떻게 알 수 알겠나. 각자의 사정에 맞는 선택이 있을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주라. 그러면서 잘 살펴보면 대부분 자기 마음속에 답이 있고, 그 이야길 해주길 기대한다. 이런저런 대화끝에 상대가 진짜 원하는 답이 뭔지 알게되면 그 답에 힘을 실어주고, 밀어 붙여주면 되는 것이다.
그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할 지 아닐지 아무도 모른다. 회사를 옮기는 게 좋을 지 아닐지, 무슨 일을 해야 성공할 지 누가 알겠는가.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들은 선택한 다음에 그걸 정답으로 만들어내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선택한 뒤 후회하며 오답으로 만든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그게 단 하나의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