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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공화국 구상

등록일 2014-10-02 02:01 게재일 2014-10-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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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어차피 우리나라도 몹시 춥기 때문에 얼마 전부터 나는 남극공화국을 건설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 어린 생각을 해보곤 한다. 지구상에 어느 나라든 나라 땅이 없는 곳은 없기 때문에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땅을 찾다 보면 결국 남극밖에 떠오르는 곳이 없다.

그런데 이 남극에 관해서는 남극조약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이를 먼저 살펴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조약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 남극 지역은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할 수 있고 특히 군사기지나 방비 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 둘째, 과학적 조사를 행할 수 있고 이를 위해서 국제협력을 할 수 있다. 셋째, 남극 지역에 대한 모든 영토 및 청구권 요구를 동결한다. 그러니까 주장들은 하고 있지만 아직은 무주공산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남극에 공화국을 건설할 수 있을까? 나라를 건설하려면 영토와 국민이 있어야 하고, 독자적인 주권을 확립해야 한다. 그러면 영토는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 사전에 따르면 이 대륙의 면적은 약 1천310만1천㎞로 추정되며, 대륙 연안의 붕빙의 면적을 합하면 1천412만㎞나 된다. 이것은 오스트레일리아(768만7천㎞) 면적의 약 2배가 된다. 넓다. 국민은 몇 명이나 되나? 현재로서는 나 혼자다. 그러나 이 글을 보고 여러 동조자가 나올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남극공화국 건설에 참여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라도 된다면 먼저 남극 대륙으로 건너갈 배를 사야 할 것 같다. 메이플라워호 같이 신대륙을 찾아가는 멋진 배를 말이다. 그리고 아직 발설할 단계는 아니지만, 만약 정 동조자가 없다면 그냥 혼자라도 가서 펭귄들을 국민으로 삼는 방법도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단 그들을 사람 취급을 해주든지 내가 펭귄이 되는지 하는 방법이 필요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주권이 문제인데, 이것은 남극조약에 의하면 쉽게 풀 수가 없는 문제다. 그런데 한 가지 원용할 방법이 있기는 한 것 같다. 일단 가서 공화국을 수립하고 몇 십 년이라도 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시간에 따른 점유권이 인정될 것이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소유권으로 전환하는 일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 기본 구상은 끝난 것 같다. 그런데 이곳이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지를 따져보는 일을 빼놓을 수는 없다. 또 같은 사전에 따르면, 무엇보다 그곳은 춥다. 심하게 저온이다. 남극 중심부는 가장 따뜻할 때가 평균 영하 30℃, 가장 추울 때는 영하 70℃다. 그리고 보스토크 기지라는 곳이 1960년에 영하 88.3℃라는 세계 최저의 기온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 기온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하나 믿는 게 있다. 실제 기온과는 다르게 체감 기온이라는 게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남극 못지 않게 춥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저온에 단련될 대로 단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먹을 게 있어야 한다. 생각해 보자. 무엇보다 물이 많아야 하는데, 이것은 얼음이나 눈을 녹일 연료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걱정할 게 없다. 그러나 연료는 또 어디서 구해야 하나? 철저한 조사를 위해서 다시 그 사전을 참고해 본다. 남극 대륙에는 석탄, 은, 주석, 우라늄 같은 자원들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 잘 되었다. 남극으로 이주할 때 삽이나 괭이 같은 것을 많이 가지고 가서 성심껏 파면 연료 걱정은 기우에 불과할 것 같다. 하지만 양식은 또 어떻게 하나? 남극 대륙 주변에는 고래가 많이 살고, 바다사자도 있고, 펭귄도 있다. 얘네들을 주식으로 삼을 수도 있겠지만 국제협약도 있고, 또 어쩐지 동족 같은 느낌이 나니 그럴 수는 없다. 하는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비닐하우스를 짓고 난로를 때서 벼나 채소를 재배하는 수밖에.

이것이 나의 계획이다. 비록 충분치 못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약속해 줄 수는 있다. 나로서는, 구성원들을, 형편이 닿는 한, 어떻게든, 따뜻하게 대해 줄 거라는 사실이다. 그게 사람이든 펭귄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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