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사태와 그에 따른 서방의 러시아 제재(制裁)는 세계가 `다극화 체제`로 변모되고 있다는 뚜렷한 징후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새로운 대(對) 러시아 제재 카드를 꺼내들면 러·중은 더 밀착한다.
유럽연합은 러시아 국영은행 및 석유회사, 방위산업체에 대한 추가 제재를 도입했고 미국은 재정·에너지·국방 분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도 심화된 제재 조치를 가할 것이라고 한다. 서방의 제재에 대해 러시아는 자동차와 산업제품 일부품목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로 대응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미국의 제재로 서방에서 구입한 항공기의 부품 공급과 기술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되자, 중국과 대형 항공기 합작 생산을 위한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한다.
이미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러·중은 에너지를 비롯한 여러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세계 속에서 힘의 중심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중립적 태도를 취했지만, 사실은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이때부터 러·중은 천연가스를 매개로 양국관계를 한층 더 공고히 하면서 서방의 견제에 공동전선을 구축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에게 힘을 실어주는 한편으로, 러시아와 함께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일본의 재무장에 맞섰다.
`자루비노항 건설 프로젝트` 역시 지난 5월 상하이에서 개최된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에서 지린(吉林)성과 슈마그룹이 계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지린성이 러시아 최대 항만운영기업인 슈마그룹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형식인 이 프로젝트는 2018년까지 자루비노항을 물동량 처리능력 연간 6천만t의 다목적항만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가 현실화되면 중국은 `동해 출구`를 확보하게 된다. 그 동안 중국은 동해와 북극해로 진출하기 위해 나진항에 공을 들였지만 진전이 없었다.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와 `극동지역 개발` 효과에다 `서방 제재에 맞대응`이라는 효과도 누리게 된다.
러시아 하산자치군에 있는 자루비노는 동북아 물류 허브로 부상한 나진항과 나진·선봉 경제특구와도 가까울 뿐만 아니라, 중·러 접경도시인 지린성 훈춘과도 근접해 있다. 자루비노에 초대형항만이 건설되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첫 단추-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더 탄력을 받을 것이다. 나아가 한반도 종단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까지 연결되면,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3대 이니셔티브(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 중에서 `하나의 대륙(물류·교통·에너지 인프라 구축으로 거대한 단일 시장 형성)`은 현실이 된다.
대한민국이 `나진·하산 프로젝트`에 어떤 형식으로든 참여했던 것처럼 `자루비노항 건설 프로젝트`에도 참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부터라도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포항시는 지난 2월24일 하산자치군과 우호교류조약을 체결했다. 하산자치군 군수는 포항시와 경제협력관계 강화 및 우호증진을 위해 지난 4월10일에 다시 포항을 찾았다. 그때에는 훈춘 시장과 함께 속초를 방문한 후 포항으로 왔다. 그 당시에 `한·중·러 3국간 항로 활성화 방안과 교류 활성화`를 위해서 해륙교통로 개발과 통관인프라 개선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고, 자루비노항과 슬라비안카항 개발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이번의 `자루비노항 건설 프로젝트`는 러·중 중앙정부 차원에서 성사된 것이리라.
현재 포항시는 창조도시-포항을 위한 위원회를 열어 총론을 그려놓은 상태다. 지금부터는 각론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항만·물류 소위원회에서는 `자루비노항 건설 프로젝트`와 결부시켜 영일만항 활성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협력민간협의회 권역별 위원회에서도 이 주제를 다뤄보면 어떨까? 필자가 이전 칼럼 `제20회 환동해 거점도시회의와 포항영일만항`에서 강조한 훈춘~하산(자루비노항)~영일만항 항로 활성화 방안과 같은 맥락이지만, 유라시아철도와 북극항로와도 연계해 폭넓게 논의하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 멀지 않아 다가올 `유라시아 시대`에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보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