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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리는 이를 쫓아낼 수 없다

등록일 2014-08-14 02:01 게재일 2014-08-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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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교황께서 이 땅에 오신다.

프란치스코 교황. 이분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중동에 가셔서는 이스라엘 대신에 팔레스타인을 먼저 찾으셨다고 했다. 이슬람 여인의 발을 씻겨 주시고, 가장 가난한 이들의 거리를 방탄 유리 없이 방문하셨다고 했다.

그분이 이제 이 나라에 오신다.

오늘 내게도 소식이 들렸다.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내쫓고 시복식을 거행할 수 없다.” 이것은 한국 가톨릭이 며칠 후 광화문에서 있을 일을 두고 언급한 말이다.

참으로 오랜만에 높은 곳으로부터 내 슬픈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는 소리를 들었다.

세상은 정녕 그러해야 한다.

힘이 약한 이들을 총과 칼과 오랏줄로 밀어붙이지 않고, 직장에서 쫓겨난 이들에게 물세례를 퍼붓지 않고, 자식과 형제를 잃은 이들을 비웃지 않고, 윽박지르지 않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법을 어긴 이들을 무섭게 엄단하지 않고, 믿음이 다른 이들을 지옥에 가라 하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 너희의 게으름을 탓하라 하지 않고, 영문도 모르고 전쟁터에 끌려가 몸을 유린당한 이들에게 없는 일을 날조한다 하지 않고, 세상의 마음을 독사의 날름거리는 혀를 닮은 붓끝으로 시퍼렇게 멍들게 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는 세상은 어떤가?

이 깊은 바닷물 속 같은 세상에 교황이 오신다. 벌써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든다.

부자들이여, 가난한 이가 성자임을 아십니까? 힘 있는 이들이여, 힘없는 이가 정의로움을 아십니까? 학식 있는 이여, 배우지 못한 이가 정직한 것을 아십니까? 어른들이여, 아이들이 세상을 가장 투명하게 아는 것을 아십니까? 아내를 때리는 이여, 여자가 있어 세상이 평화로움을 아십니까? 피붓빛이 희고 얼굴이 아름다운 미인이여, 못생긴 사람의 마음씨가 착한 것을 아십니까?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충청도 공주 땅에 살았다. 근화 유치원, 그러니까 무궁화 유치원에 다녔다. 그림도, 한글도 배우고, 유치원 건물을 뱅뱅 돌며 달리기도 했다.

그때 수녀님이 계셨다. 수녀님 아래로 여자 선생님이 또 한 분 계셨다. 그러니까 그곳은 가톨릭 계통의 유치원이었다. 아마도 공주 성당에서 세웠거나 운영했을 것이다.

하루에 한 번 간식을 먹었다. 공주보다 더 깊은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우유라고는, 비스킷이라고는 그때 처음으로 먹어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줄을 지어 차례로 유치원의 따로 마련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간다. 긴 사각 탁자를 중심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빙 둘러앉는다.

그리고 수녀님을 따라, 선생님을 따라, 성호를 긋는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한 조각의 비스킷과 한 잔의 우유는 그때 내게 성스러운 빛을 띠고 있었다.

교황이 이제 이 나라에 다시 오시니, 나 또한 아주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그 어릴 때, 동화책을 보면, 콩나무가 자라나 하늘 끝까지 닿고, 밤에 물항아리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나오고, 나무꾼이 선녀를 만나 아이들을 낳고 살았다. 마법이 그때는 현실이었다.

또 있다. 그때 그림책을 보면 코끼리는 코가 길고, 기린은 목이 길고, 두루미는 주둥이가 길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이제 교황이 오시니, 마음의 눈이 먼 이가 눈을 뜨고, 마음의 등이 굽은 이가 허리를 펴고, 마음의 다리가 주저앉은 이가 바로 일어서리라.

마음을 다해 비오니, 교황이시여, 하느님이시여, 이 나라를 옳게 이끄소서. 부디 저를 옳은 길로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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