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최초의 통일왕국을 세운 이가 진시황이다. 유능하고도 야심찬 군주였던 그는 군현제를 실시하고 수레와 문자를 통일하는 등 세상을 하나로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엄격하다 못해 가혹했다. 법으로 천하를 다스려 죄를 지은 자는 용서하지 않았다. 의학이나 식목에 관한 책들 말고는 다 태워 버리도록 했고, 황제의 험담을 한 유생들을 파묻어 죽였다. 아방궁을 짓고 만리장성을 쌓아 백성들을 노역에 동원하여 험하게 다루었다.
진시황이 천하를 순시하다 병으로 급서하자 다음 황제를 옹립해야 했다. 부소가 진시황의 장자였다. 사리에 밝았던 그는 아버지에게 간언을 올리다 미움을 받아 변방에서 흉노를 막고 있었다.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가 진시황의 죽음을 은폐한 채 황제의 조서를 꾸며내 부소로 하여금 자결하게 했다. 진시황의 또다른 아들 호해가 황제가 되고 이사마저 조고의 참소로 죽음을 당하자 천하의 권력이 조고에게 돌아갔다. 호해는 무능하고도 향락적인 군주였다.
어느날 조고가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다. 호해는 이것이 어찌 말인가 하지만 조고를 두려워 한 신하들은 대부분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했다. 이에 호해는 자신의 분별력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겨 아무 일도 하지 않다 결국 조고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이로부터 지록위마라 하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함은 아랫 사람이 윗사람을 진실하지 못한 말로 겁박함을 가리킨다.
호해가 과연 남들은 다 아는 것을 자기만 모르고 있다고 여겼는지 알 수 없다. 으르고 협박하는 위세에 밀려 스스로 분별력 없는 자로 처세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몰락의 단초였다. 환관 조고는 황제 앞에서 자신의 말을 부정한 이들을 가려내 내쫓고 세력을 구축하여 호해를 황위에서 끌어내리고 만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
미셀 푸코의 말과 사물이나 중국 고서인 산해경을 보면 옛날 중국 사람들은 우리 현대인과는 전혀 다른 분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산해경은 외눈박이 사람들도 나오고 남자인 듯한 인어까지 등장시키고 있어,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다. 고인들은 환상적 범주까지 실제적 범주들과 나란히 놓고 분류를 가했다.
하지만 지록위마는 그 옛날 사람들의 인식이 현대인들만큼이나 날카로웠음을 알게 한다.
사슴은 우제목에, 말은 기제목에 속한다. 우제목이란 소목이라고도 하니 사슴은 소와 일가친척인 셈이다. 그러니까 사슴과 말을 구별 못한다 함은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불변처럼, 인간 생활에 가장 긴요하면서도 대척적인 두 짐승, 소와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호해는 그렇듯 어리석어야 했다.
주권론에 따르면 옛날 황제 나라의 주권은 황제에게 있었다. 오늘날 그것은 국민 각자에게 있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국민 개개에게 조각조각 흩어져 나뉘어 쥐여져 있는 주권이란 얼마나 추상적이고 실체 없는 것인가? 이런 쪽모이 의사 주권으로는 어떤 완전한 주권적 실체도 명확히 드러낼 수 없고, 기껏해야 몇 년에 한 번씩 치러지는 선거에서의 투표라는 형태로나 그 형해를 드러낼 뿐인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국민이란 저 진나라 2대 황제 호해의 형상을 나누어 가진 이름뿐인 황제들에 지나지 않기 쉽다. 또 그래서 이 현대에도 저 환관 조고의 배역을 자임하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그분들은 지금도 여기저기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 그러면 또, 자기가 제 정신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들판에 나가 구덩이를 파고 세상에는 할 수 없는 말을 쏟아붓고 묻는다. 사슴은 사슴일 뿐이라고.
그 구덩이 위에 풀이 자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시신의 냄새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