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80년대만 해도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진 평범한 대학생들이라면, 진실은 결국 통한다고, 진리는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만큼 순진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 자신이 그런 순진한 학생들 중 하나였읕 뿐인지도 모른다. 또, 상식선에서 보면 진실은 통하고 진리는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진실은 곧이곧대로 드러나지 않는 때가 너무 많다. 그것은 저 1980년대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밤늦게까지 뉴스를 보고 새벽에 다시 뉴스를 보는 노인성 체질이 되어버린 나다. 새벽에 스마트폰으로 `다음`을 보는데 믿기지 않는 뉴스가 떴다. 그토록 행방을 쫓던 유병언 씨가 매실밭에서 40일 전에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댓글들도 믿을 수 없지만 그래도 몇 개씩은 떠들어보게 된다. 대부분 장난질하느냐는 투다. 정부나 검경 등 공신력 있어야 할 기구들의 발표 등을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쉽게 믿음이 가지 않는데 사람들이 다 믿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도 그런 오산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의심이나 의혹이 아무리 많이 제기되어도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응대하는 곳은 없다. 공적이고도 합리적인 태도로 사실을 추구하고 검증해 나가야 할 언론은 받아적고 옮겨적고 마감 시간에 맞게 편집하기 바쁘다. 발표나 선언은 그것으로 진실인 듯 행세하고,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은 불온하고도 불경한 자가 되기 쉽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고 자기 한 입 먹고 사는데도 지쳤기 때문에 또 그러려니 한다. 그렇다 한들, 그렇지 않다 한들 대체 그게 나와 무슨 큰 관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또 발표 내용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에 반응하는 방향이나 수위는 이미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이나 지지 정당 등에 따라 대부분 사전에 결정되어 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안산에서 서울의 국회의사당까지 걸어간 단원고등학교 생존 학생들이 말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틀렸다. 진실은 언제든지 침몰할 수가 있다. 파묻힐 수도 있고 불에 태워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어른이 되면 진실을 원치 않고 또 진실로부터 되도록 멀리 있어야 안전하다고 믿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른들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나는 이 사건에 관해 숱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명쾌한 설명을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슬픔만큼이나 답답한 나날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의혹을 품을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그 이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들이 세월호 참사와 어떤 유기적인 관계가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들 사이에는 뭔가 인과 관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만약 나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한다면, 더 슬픈 일이지만 이 사회는 죽은 것이다. 우리 사회가 죽어 있지 않는 한 나 혼자만 이런 생각에 빠져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크나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한다. 진실에 대한 의지가 적은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으며 그런 사회가 구성원들을 두루 행복하게 해줄 리가 없다.
문제가 크고 괴로울수록 때로는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한 법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쉽게 진정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더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우리 사회에는 지금 현명한 사람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태의 추이를 넓게 살펴 대증요법 차원을 넘어 실효성 있는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안에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사회는 인식을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