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다시 세월호

등록일 2014-07-17 02:01 게재일 2014-07-17 19면
스크랩버튼
▲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장마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마른장마 무더위에 못이겨 여름감기에 걸렸다. 덥다고 감기 걸리랴만 선풍기를 틀고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던 일주일 사이에 목에 가래가 끓고 코에서는 콧물이 줄줄 흘렀다. 아예 목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감기가 심해지면서, 너무 몸이 안 좋아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사지에 힘이 없는 것은 분명 더위를 먹어도 몹시 먹은 탓이었다. 몇 날 며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픽픽 쓰러지기 바쁜 나날 끝에 나는 드디어 어느날 밤 한강변으로 나갔다. 뜨거운 두통이라도 식히자며 여의도 공원 옆에 한강변에 나간 것이다.

바뀌어도 몹시 바뀌었다. 몇 년 전에 가끔 그곳에 가서 봤던 살풍경은 어디 가고 강변은 온통 풀숲 천지가 되어 있다. 시멘트 콘크리트 제방과 계단은 어디로 갔는지 없고, 불과 이태만에 친환경 강변으로 거듭나 있다.

한밤의 강변은 아름답다. 강바람도 그날 따라 소슬하다. 무엇보다 바람에 실려오는 풀내음이 좋았다. 여러 풀향이 뒤섞인 풀숲 냄새, 날이 가물어 건초가 되다시피 한 풀들의 마른 냄새가 감기에 지친 감각을 새롭게 일깨워 준다.

강가에 앉아서 건너편 마포 쪽을 바라보니 가물가물 했다. 강 수평선 너머에 작은 가로등들이 점점이 이어지고, 자동차들 헤드라이트 불빛, 그리고 강변에 늘어선 건물들의 형광 빛들. 이런 때 빛이 적은 것도 좋았다. 어둠 속에서 적은 빛을 건너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나. 강 물결은 시간을 잊게 한다. 이제는 일어나야겠어서 밤의 강변을 등지고 나왔다.

그때다. 한강변 여의도 둔치 공원 바로 옆에 때 아닌 경찰병력의 대이동이 있다. 경찰 버스가 열 대 넘게 줄 지어 늘어서고 전경들이 대열을 이루어 요소 요소 막아섰다.

무슨 일일까. 그러나 그런 밤에 지금 국회 주변을 둘러싸야 할 일이라고는 세월호 문제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의문은 다음날에 풀렸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며 국회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유가족들은 농성을 하고 그중 대표자들은 단식을 시작했다.

예삿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 세상은 이 문제를 제대로 풀지 않으면 안 될 때를 맞이했다.

과연 이 문제를 비껴갈 수 있을까?

여야는 다시 보선이다, 대표 경선이다, 뭐다 해서 정신이 없다.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보면 마치 세월호를 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진실의 길`은 왜 쓸데없이 야당의 공천이 어떠니 하고 있나? `망치부인`인지 뭔가는 원래 그렇게 `친문`으로 일관했나? 다들 정쟁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한 느낌이다. `노유진`도 `전국구`도 다들 딴청이다. 정세를 타서 그런가. 원래 그렇게 시류적이었나.

목소리가 고픈 세상이다. 한밤의 제복 물결은 다시 우리가 서 있는 자리를 일깨운다. 회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맞이하라. 그러나 과연 고개를 돌리지 않을 성의나 의지를 누가 갖고 있을까.

그로부터 사흘이다. 아직도 여름감기는 나의 주인이다. 주인을 모시고 새벽에는 독일이 피파컵을 차지하는 시합을 보았다. 눈을 뜨니 후반전, 또 눈을 뜨니 연장전, 또 눈을 뜨니 메시가 자기를 위로해 주는 독일 선수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다 끝났다. 하지만 쉽게 끝나지 못할 것 같다. JTBC가 밤마다 왜냐고 묻는다. 그것보다 이번 유족들은 비밀과 보상을 교환하는데 꽤나 긴 시간을 요구할 듯하다. 그들은 지금 보상보다 진실을 원하고 있다.

나 또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밤마다 유튜브가 내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그 소음 속에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스며들어 있다.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