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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여행

등록일 2014-06-26 02:01 게재일 2014-06-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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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생각없이 바다를 향해 떠났다. 하루 당일치기로 동해 바다를 따라가 보자는 것이었다.

여정은 복잡했다. 다른 사람들 가는데 따라서 같이 가는 길이라 내 맘대로 코스를 잡을 수도 없었다.

먼저 청량리역에서 경춘선 ITX 열차를 타고 남춘천역까지 갔다. 청량리 역은 역시 크고 남춘천 역도 완전히 변했다. 예전에 청량리에서 춘천까지 두 시간 걸리는 기차를 타고 시간강의를 하러 다녔었다. 이제는 나도, 세상도, 자연도 변했다. 쭉 뻗은 기찻길로 한 시간 남짓, 굽이굽이 자동차 길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휑뎅그레 커다란 남춘천 역에 내리니 가는 세월이 속절없기만 하다. 여기서 버스로 오대산으로 간다. 굽이굽이 강원도 옛길 대신 다시 쭉 뻗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국도로 접어들었다. 요즘은 국도조차 왕복 4차선에 다리미로 쫙 펴놓다시피 해서 시골길 가는 향미가 다 날아가버리다시피 했다. 차창으로 펼쳐진 평창, 진부 푸른 산야가 한가닥 위안일 뿐이다.

그러나 오대산 월정사 숲길은 역시 아름답다. 1킬로미터 남짓 전나무 숲길에 들자마자 피톤치드 향이 코를 찌른다. 이제 비로소 세속 떠나온 느낌이 든다. 걷는다. 나무향이 내 몸에 스미도록. 앉는다. 높디높은 나무 밑에. 오래 전에 길 떠나 지친 행인처럼.

사람들이 월정사를 돌아보는 시간을 숲길에 바치고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르자 차는 이제 본격적인 강릉행이다. 먼저 커피 거리가 있다는 안목 항구로 간다. 나는 또 사람들과 헤어져 해변 가로 나가 어느 높은 건물에 있는 할리스커피로 들어간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커피숍이다. 사람 드문 커피숍 안락의자에 길게 앉아 머리뒤로 손깍지를 끼고 있으니 바다가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다.

안목 항구 다음은 강릉역이다. 옛날에 청량리에서 강릉까지 기차로 떠나온 적이 있었던가. 버림 받은 것 같은 자그마한 역사를 보자 세상은 왜 그렇게 쉬이 변하는가 싶다. 유용하고 요긴하던 것들이 어느 사이에 흔적기관처럼 도태되고 마는 세상이다.

살아남으려는 안간힘 때문에 바다열차라는 것도 생겨났다. 플랫폼에 나가 기다리자 곧 겨우 네 량만을 붙인 바다열차가 들어온다.

차리느라고 차렸다. 바다열차 외벽에는 돌고래떼를 그려넣었고 전체적으로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잠수함 설정이다. 앙증맞고 귀엽다. 그럼 선실 속으로 들어가 볼까.

잠수함 속으로 들어가자 안쪽 벽에는 해조류들이 판박이처럼 붙어 있다. 해마, 소라, 물고기 같은 것들이 벽에들 다닥다닥 붙어 있다. 객실 안으로 들어가자 천정에는 선실의 형광빛 조명등이 붙어 있고, 비상용 하얀 구명대가 줄 지어 장식으로 붙어 있다. 객실 전체가 잠수함 선실 흉내를 내고 있어 바닷길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 시간 바닷길. 바다열차는 바닷가 선로를 따라 바다를 보여주고 숨기며 묵호, 정동진을 지나 추암이라는 간이역까지 간다.

바다는 아름답고도 쓸쓸하다. 나는 요즘 바다만 보면 아이들 생각이 절로 난다. 몹시도 평화롭게 머리를 곱게 빗고 있는 것 같은 바다도 아이들을 잡아 가둘 수 있다.

터널로 기차가 들어가자 선실 안은 갑자기 빨간 형광색 조명등이 켜진다. 나는 그것이 마치 잊을 수 없는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 숨이 막히는 듯하다. 다행이 터널은 길지 않다.

차창 바깥으로 수평선이 열린다. 오늘 바다는 울지 않는다. 아무 말도 없다. 나는 왜 내가 여기까지 와 있나 생각한다. 바다를 보아 무슨 위로를 얻으려 했나. 아이들은 동쪽 아니라 남쪽에 있다.

추암역이다. 서울로 돌아가라는 곳이다. 세상으로 돌아가라는 풍경이다. 막걸리 한 통 사들고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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