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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여정과 우리 밀

등록일 2014-06-24 02:01 게재일 2014-06-2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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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대한민국의 유행 주기가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아프고 아프지만 이백명이 넘는 고귀하고 순고한 세월호 희생자들은 두 달도 안 돼 과거의 이야기가 돼버렸다. 세월호 추모 열기를 잠재웠던 6·4 지방선거는 지금은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낯선 단어가 됐다. 세월호, 지방선거의 뒤를 이은 `유병언 로또`또한 현상금 사냥꾼들의 눈만 번득이게 했지 역시 대한민국의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6월, 대한민국은 브라질 월드컵이라는 새 유행에 빠져 있다. 거리 응원전이다 뭐다 해서 뭔가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전 월드컵 열기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다. 세월호 희생자를 생각하면 차분한 월드컵 분위기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필자가 보기에 지금의 이 분위기는 세월호와는 거리가 멀다. 이런 시들한 월드컵도 한 달 안에 유행이 끝날 것이다.

최근 일련의 일들을 보면 이 나라에서는 아무리 큰 사건도 그 유효기간이 두 달을 넘지 못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 우리 민족의 정서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예로 드는 것이 은근과 끈기다. 하지만 `은근과 끈기`는 오늘날 대한민국에는 너무도 맞지 않는 말이 돼버렸다. 현대 대한민국의 정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을 들라고 하면 필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냄비근성을 말한다. 은근과 끈기 VS 냄비 근성! 국가 개조에 앞서 민족성 개조가 먼저 됐으니, 이 나라의 미래는 과연 어떨지?

하지만 이 나라의 미래가 꼭 어둡지만은 않은 것은 고집스럽게 은근과 끈기를 지키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분이 `구례 우리 밀 가공 공장`을 통해 우리 밀 살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최성호 대표! 식량주권(食糧主權)이라는 말이 있다. 식량주권이란 `생태계에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된 건강하고, 문화적으로 적합한 식량에 대한 민중들의 권리이며, 민중들이 자신의 고유한 식량과 농업체계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위키백과사전) 쉽게 말해 우리 먹거리를 우리가 지키자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양정자료에 따르면, 2012년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45.3%로 사상 최저치라고 한다. 특히 식용과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23.6%에 불과하고, 그 중 밀 자급률은 0.9%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미 우리는 외국 공룡기업들에게 곡물 주권을 빼앗겼으며, 밀을 통해 곡물 식민지로서의 아픔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것을 포기한 대가로 아무리 비싼 값을 지불하더라도 수입 밀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밀은 우리에게 우리 먹거리를 지켜내지 못하면 분명 가까운 시일 내에 식량 안보에 큰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교훈을 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국방 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식량 안보인데 유행에 길들여진 이 나라 국민들은 그걸 모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어렵고 힘들지만, 유행에 물들지 않고 꿋꿋하게 우리 먹거리를 지켜나가고 있는 최성호 대표야 말로 진정한 나라 지킴이이다.

지난주 토요일에 필자는 구례 우리 밀 가공공장에 가서 직접 최성호 대표를 만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각 학교에서는 체험행사 전에 두 번에 걸쳐 사전답사를 실시하고 있다. 본교에는 학생들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생산지를 찾아 바른 먹거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산지여정`이라는 경상북도교육청으로부터 정식으로 교과목 승인을 받은 특성화 교과가 있다. 올해 산지여정의 주제는 `밀과 소금`이어서 장소를 구례로 정했다. 그리고 지난 주 두 번째 사전답사로 필자는 구례를 찾아 밀 강연을 부탁하기 위해 최성호 대표를 만났고, 기분 좋은 승낙을 받았다.

자급율이 0.9%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 먹거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서 단일 농산물 품목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체험장을 만들었다는 최성호 대표! 우리 학생들이 이번 산지여정 수업을 통해 유행에 물들지 않고 우리 것을 지켜나고 있는 최성호 대표의 가치관을 배우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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