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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레기다!

등록일 2014-06-10 02:01 게재일 2014-06-1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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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형 시인·산자연학교 교사

분명 4월과 5월은 아우성이었다. 그것도 소리 없는 아우성. 더 큰 아픔을 건너는 이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제발 꼭 돌아오라고. 오로지 그 마음뿐이었다. 아우성은 전 국민의 가슴에 노란 리본으로 피어났다. 노란 리본이 고리가 돼 저 어둡고 깊은 진도 맹골수도의 거친 물살을 잠재우고 우리 아이들에게 구원의 밧줄이 돼 주길 간절히 기원했다. 그 모습에 전 세계가 우리를 위해 함께 아파해줬다.

하지만 진심이 담겨 있지 않은 아우성은 썩은 동아줄에 지나지 않았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라는 하나 된 마음도 4월도 못 넘기고 흔들렸다. 정치인들은 그 흔들리는 아우성을 자기 멋대로 이용했다. 양심 썩는 냄새가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대한민국은 온통 쓰레기 천국이 됐다. 그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많은 신조어들이 생겼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레기(기자 + 쓰레기)!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 `-레기`라는 접미사가 어울리는 것이 어디 기자뿐이겠는가. 정치, 교육, 기업 등 이 나라 모든 곳에 `-레기`만 붙이면 정말 신기하게도 모두 말이 된다. 정레기, 교레기, 기레기, 심지어 대레기까지. 유행어는 그 사회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지난주에 학생들과 공부했다. `-레기`라는 말이 넘쳐나는 것처럼 지금 이 나라에는 역한 냄새만 가득하다.

필자 또한 마찬가지다. 구태(舊態)한 교육과정에 얽매여 학생들의 희망을 꺾어 놓는 필자는 분명 교레기(교사 + 쓰레기)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전혀 없는 교과서와 수업 내용, 그리고 교수 방법. 10년 전에도 그랬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 나라의 희망이다. 희망찬 이 나라를 위해 너희들의 큰 꿈을 펼쳐라!” 앵무새의 유전자가 이식됐는지 필자는 지금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이 말을 말하고 있다. 단 하나 다른 것은 예전만큼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설레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필자가 설레지 않는데 학생들이야 오죽할까.

필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이곳 학생들은 분명 어떤 형태로든지 공교육에서 상처를 받은 학생들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공교육으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보상은커녕 의무 교육 대상자들이면서도 많은 수업료는 물론 급식비, 심지어 교과서 대금까지 자신들이 직접 내고 있다.“선생님, 중학교는 의무교육 아닌가요, 그런데 우리는 왜 많은 돈을 내야해요?” 학기 초에 받은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아직도 답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 필자는 분명 교레기가 맞다.

그런데 묻고 싶다. 과연 이 나라에, 이 나라 교육에, 이 나라 정치에, 이 나라 기업에 양심은, 희망은 있는가? 최근 국어사전을 찾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 왜냐하면 단어의 뜻을 잘 몰라서다. 모른다기보다는 예전에 알던 것과는 너무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이 많아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말이 희망이라는 단어다. `희망(希望):앞일에 대하여 어떤 기대를 가지고 바람. 앞으로 잘 될 수 있는 가능성` 분명 필자가 알고 있는 희망이라는 단어의 뜻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 상황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긍정적 기대를 할 수 있을까, 또 잘 될 가능성은 있을까. 분명한 건 대한민국의 양심과 희망의 등대가 꺼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양심과 희망을 찾기 위한 아우성들이 간간이 들리지만, 그 마지막 아우성조차 선거와 월드컵 함성에 묻혀 버렸다는 것이다. 큰 네거리마다 내걸렸던 미안하다는 현수막이 치워지고, 그 자리에 감사하다는 문구가 내걸렸다. 정말 세월호가 이대로 지나가도 되는가. 텔레비전 화면 상단에는 이제 안타까운 실종자 숫자 대신 월드컵 D-day 카운트 다운을 알리는 숫자가 떴다. 세월호에 대해 그렇게 호들갑을 떨 때는 언제고 언레기(언론 + 쓰레기)들은 월드컵 띄우기에 혈안이 돼있다. 왜 돈이 되니까.

6월의 환호성과 함성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가슴에 묻은 수백 명의 어린 목숨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4월의 아우성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이 나라는 국호를 바꿔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니라 `대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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