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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선거

등록일 2014-05-29 02:01 게재일 2014-05-2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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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민호 서울대 교수·국문과

어머니 말씀에 너는 목수로 치면 소목이니 큰 일에 참견하지 말라 하셨다. 대목이란 집 짓는 목수요 소목이란 가구 만드는 목수다. 문학이니 시니 하는 것이 아무리 크게 써도 기실 소목장 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니 세상일에 과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다.

선생님 말씀에는 평생 보직을 갖지 말라 하셨다. 자기 공부나 하고 학생들 만나면 됐지 더 욕심 낼 필요 없다는 말씀이셨다. 맞는 말씀이기도 하다. 책을 읽을 수 있고 학생들 앞에 설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노스님께서는 몇 주 전에 학생들을 곡진하게 가르치라고 하셨다. 이 곡진하게라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쏙 빠질 뻔 했다. 정성스럽게, 상세하게 가르치라는 말씀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선생이란 자에게 정말 아픈 말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도 때는 때다. 바야흐로 세상은 선거철을 맞았고, 마침 내가 몸담은 학교에서도 선거가 펼쳐진다. 조금 있으면 총장 선거도 치른다는데, 그건 아직 여유가 있는 듯하고 지금은 바야흐로 학장선거 주간이다. 이제 목요일이면 사람들이 떼를 지어 교수회의실에 모여 후보자들의 한 말씀들을 듣고 투표를 해야 한다.

원래 이곳의 인문대학 학장은 어문 계열에서 한 번, 사학 및 철학 계열에서 한 번 하는 식으로 교대로 맡는 게 불문률이다. 지난 번 임기 때는 사학 및 철학 계열에서 학장을 냈으니 이번에는 어문 계열에서 학장을 낼 차례다. 그러니까 국문, 영문, 중문 등등의 학과들에서 학장 후보를 내게 되는 것이고, 사철 쪽에서는 나오고 싶은 분이 있어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선거에 입후보한 분이 모두 합해 세 분이다. 그러고보니 2~3주 전부터는 그냥 지나다니기만 해도 인물평 오르내리는 것을 얻어듣게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누가 누군지 아무 것도 몰랐을 텐데 지금은 나도 소위 관록이 붙었는지 다른 분들 말씀 안 듣고도 누가 누군지 안다.

과연 어떤 분께 표를 드려야 하나? 하고 가끔 한번씩 생각하던 어느 순간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선생님께서 전화를 해오셨다. 잠깐 얼굴 한 번 보자는 것이다. 원래 반갑게 인사하는 사이라서 쾌히 응낙하고 연못 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서는 조금 불안해졌다. 내가 제외시켜 놓은 분을 추천하시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다. 그날 그분이 어느 분을 추천해 주셨는지는 물론 밝히지 못한다. 다만 마음이 통했다는 것뿐.

어떤 분이 학장이 되셔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어떤 분은 아니 되셨으면 하는 판단은 있다. 도대체 선거에서는 누굴 `찍지` 말아야 하나?

첫째, 직함을 권력자리, 올라갈 자리, 누려야 할 자리로만 보는 분은 사절하고 싶다. 봉사하려는 마음,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둘째, 일을 벌여 세상을 쉽게 바꾸려는 분은 사절하고 싶다. 내가 이곳에 와서 보니 몇 번씩 슬로건을 달고 이 세계를 바꾸겠다는 일들이 있었다. 쉽게 바꾸려 하다 보니 하는 일마다 더 나빠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은 일답게 정성을 들여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빈 말씀 하시는 분도 사절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현대는 말이 타락한 시대다. 이 자리에서 쉽게 꾸민 말로 사태를 모면하고 저 자리에 가서 똑같이 만든 말로 인기를 얻으려 하면, 바로 그것 때문에 신뢰의 위기가 심화된다. 신뢰를 가꾸고 키울 수 있는 분을 만나고 싶다.

바야흐로 나도 한 표를 행사할 목요일,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비밀이지만 우리 후보님들 가운데는 그런 분이 안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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