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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토마 피케티

등록일 2014-05-19 02:01 게재일 2014-05-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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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명수 포항대 교수·관광호텔항공과

“빈부격차가 하늘과 땅처럼 벌어지고 부정부패가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던 고려 말, 새로운 시대를 만들기 위해 온몸을 던진 정도전이 수백 년 세월을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같다”, “피케티 열풍은 최근 다보스 포럼에서 교황이 보낸 서신,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 연설 등 불평등을 거론하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일어난 유행 같은 느낌이다”

첫번째 인용문은 정도전 연구 권위자로 `정도전 사상의 연구`를 펴낸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KBS1 사극 `정도전`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인 필자는`정도전 열풍`이 부는 이유를 생각한다. 고려 말처럼 혼란한 한국 사회에서 사회시스템 전반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 이런 고민 중에 `새로운 시대정신`을 선점하며 국가의 큰 틀을 새로 짠 정도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게 아닐까? 노동전문가에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낸 정현민 작가는 사극 `정도전`을 집필하면서 “어설프게 오버랩 시키지 않아도 시청자와 위정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도전`을 통해 우리와 우리시대를 되비춰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빈부격차와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백성이 있고, 민본(民本)과 민생을 외치는 위정자가 있는 건 비슷하다.

권문세가의 자제로 노회한 정치가인 이인임에게 맞서다가 1375년 전남 나주로 유배를 당해 9년 동안 귀양살이를 하면서 민초들의 밑바닥 삶을 체험한 정도전은 이때 새로운 국가의 큰 틀을 기획한다. 이성계의 막료가 된 후 반대에 부딪치거나 자신의 신념이 흔들릴 때면 `민초들의 삶의 현장`으로 달려가 그들을 보며 자기를 다시 세우는 장면들이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과전법을 실시해 자신의 민본사상을 실행에 옮기면서 조선개국의 토대를 마련해나가는 과정도 오롯하게 다가온다. 40년 지기 포은 정몽주와 한 배를 타고 가다가 갈라서게 되는 근본적 이유를 알게 되는 건 사극의 덤이다.

두 번째 인용문은 `21세기 자본론`을 저술한 피케티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교수가 언급한 내용이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잘 짚어내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피케티의 저작은, 향후 자본주의에 불안정을 가져올 `불평등에 대한 경고음`으로 읽힌다. 대니 로드릭 프린스턴고등연구소 교수에 따르면, “피케티 주장의 핵심은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는 한, 소득 대비 상속된 부(富)의 비율은 계속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근거로 피케티는 앞으로 소득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된다고 강조하면서, 우리시대의 자본주의를 상속받아 부를 늘리는 `세습적 자본주의`라고 명명한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수상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피케티가 제시한 소득 상위 1%에게 소득세를 최고 80% 물리고, 자산에 대해서도 매년 최고 5~10% 세금(부유세)을 부과하자는 안에 어떤 입장일까? 그는 이러한 부유세 도입이 과거에 재산을 축적하기위해 일했던 것에 대해 사후적으로 추가부담을 지우는 것이라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지?

21세기 우리사회에 정도전과 피케티를 이렇게 불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대한민국호의 향방표지를 그리는데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해서다. 향후 대한민국호는 민본과 민생을 키워드로 우리사회의 심각한 리스크 중의 하나인 빈부격차를 해소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이에 대해 구체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권 초기에 터지는 큰 사건이나 참사는 국가의 주요정책들을 견인할 동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이 같은 상황에 처한 대한민국호가 표류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정책을 다 끌어안고 가기보다는 민본과 민생을 우선순위에 두고 끝까지 밀고 나갈 정책들만 선택해 그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사람에게 있고, 모든 문제의 해결도 사람에게 있다고 하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는 아름다운 화합의 공동체`와 `정의의 맞은편에 불의가 있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정의가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빈부격차가 해소되고,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어야만 한다. 필자가 정도전과 피케티를 호명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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