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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존재들이 그려낸 낯선 초상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5-09 02:01 게재일 2014-05-09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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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의 사회학` 김지녀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48쪽

익숙한 언어 질서와 의미 체계를 전복해, 늘 곁에 있었으나 깨어나지 않았던 말들의 입체적 이미지를 되살려낸 시집 `시소의 감정`으로 편운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시인 김지녀가 두번째 시집 `양들의 사회학`(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기성의 개념에서 벗어나 사물 자체를 자신의 감각으로 새롭게 매만지는 그만의 생동감이 여전한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무수한 존재들을 제 몸에 품었다 낸다. 그들이 들고 난 상흔으로 무너진 얼굴들이 빽빽이 겹친 55편의 시들에서, `양들의 사회학`이라는 기이한 몽타주가 생겨난다. 그리고 그 “세계의 자화상”에는 시대의 초상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여기, 바깥을 향해 계속 자라는 목과 이미 알려진 세계를 무위로 돌리는 낯선 코, 허공에 밧줄을 매다는 절박함으로 문장을 되새김질하는 공복과 부정의 힘을 쥔 왼손, 그리고 실패를 반복하는 `더러운 손`과 `낭비`로써 존재의 변이를 촉진하는 `넘치는 발가락`이 있다. 이 시집의 이미지-언어는 어떤 `초상화`, 궁극적으로는 세계의 `자화상`이 될 신체의 부분들을 포착하는 데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다. 그것은 냉철하고 정교한 `객관적` 시선이 움켜쥘 수 없는 우리 자신의 그림자고, 세계의 배후이며, 시간의 기미다.” -함돈균(문학평론가)

“우리의 발목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긴”(`B1`). 첫 시의 첫 문장을 실마리 삼아 조심스레 짐작해보면, 이 시집은 `우리` `몸` `이곳` `지금`을 이야기할 것이다. 김지녀의 시를 신(新) 서정이라 이름 붙였던 가장 큰 이유는, 시인 내면의 단일한 목소리가 아닌 다수의 익명적 존재들이 화자 역할을 하여 입체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바깥에서 피고 지는 것들이 나를 향해 돌진한다는 생각으로”(`혼잣말의 계절`) “줄지어 내게로 달려 들어온 것들”(`검은 재로 쓴 첫 줄`)을 만신(萬神)처럼 품는다. 시인은 몸을 열어 “낯선 손과 악수”하고, “네번째 온 사람, 여섯번째의 노인이나/아흔두번째의 양”(`검은 재로 쓴 첫 줄`)이 된다.

김지녀가 그리는 “세계의 자화상”은 시대의 민낯을 동반한다. “우리 시대의 젊은 감각을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할 때, `사회학`이 문학적 신체의 단순한 후경이 아닌, 그 신체의 감각을 배태하고 지탱하며 변형시키는 존재 지평이라는 사실에 대한 발견이야말로 필수적”(함돈균)이기 때문이다.

“이름 모를 병이 많고/설명할 수 가늠할 수 없는 아픔이 많”은 이곳엔, “갑자기 잠에 빠져/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오늘의 체조`), “무엇이든 꼭 쥐고 놓지 않는 감자 손가락이 잘린 감자 파업 중인 감자 떠도는 감자 침묵하는 감자”(`더 딱딱한 희망`), 앞선 한 마리를 따라 벼랑인 줄도 모르고 우르르 몰려가는 양 떼(`양들의 사회학`)와 “겁먹은 쥐들”(`회색 눈동자`)이 있다. 세상은, 문제가 있다. “사회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심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국문학 혹은 정치학 전공자로서, 사람들은 현상을 “해석”하고 “한참을 생각”하며 고민한다. 하지만 폭우처럼 쏟아지는 사회적 병폐의 `의미`를 곱씹는 중에도, “여자아이는 알몸으로 떨”며 한 남자는 빗속에서 사라져버리고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다 젖어”간다. 발밑으로 흐르는 빗물인지 핏물인지 모를 것만 속절없이 지켜볼 뿐이다(`붉은, 비가`). 해결책은 마땅치 않다. 그러므로 이미 그어져 있고 “아무도 넘지 않는” “선 위에서 우리는 떨고 대결한다/왼쪽과 오른쪽이 되어 줄다리기를 한다/아무도 불평하지 않아서/선은 공평하다”(`선`). `우리`들이 아무리 단단히 각오를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다 땅속의 평화와 안전은/보장받을 수가 없다/거대한 손아귀가 줄기를 잡아당기는 순간/크고 작은 주먹들이 열없이 쏟아져 나온다/올해도 흉작이다”(`더 딱딱한 희망`). 이것이 `우리`의 사회학이다.

김지녀의 `사회학`은 암흑에서 길어 올린 깊은 자괴나 부글부글 끓는 울분과는 거리가 멀다. 옅은 자조가 섞인 시인의 진단은, 애써 “안 될 거야, 아마”라고 뇌까리는 지금 젊은 세대들의 낙관도 비관도 아닌 담담한 현실 인식과 얼핏 닮아 있다. 시인에게 이 이상한 세상을 공격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미지를 전복하는

▲ 김지녀 시인

부비트랩을 설치해두고 줄곧 시선을 유지한 채 온 세상으로 퍼지기를 기다리는 것일 테다.

시인은 “희망도 불행도 없는 얼음”처럼 무겁고도 단단한, 차가운 진실을 껴안고는, “다 말하지 못한 진실의 먼지들”(`해동`)이 고여 있는 “가장 사적이고 사색적인” 몸을 열고 세계의 이미지를 품을 준비를 한다. 아직,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이/켜켜이 쌓여 있다”(`발설`). “무정한 고요와 기만적 평화가 “무너지고 무너지면서”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개미들의 통곡`)하”(함돈균)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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