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태 속에서 기성세대치고 죄인 아닌 이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죄의 뿌리는 우리들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386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우리 세대의 잘못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이 세대는 1980년대의 민주화 과정에서 큰 몫을 해냈다. 이들이 대학과 산업 현장에서 일으킨 민주화 운동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정치적 개혁으로 귀결되었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그때껏 독재에 시달려 온 것을 감안하면 아주 크고 귀한 결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어야 했다. 이 새로운 시작점을 어떤 종착점처럼 착각한 것은 이 세대의 커다란 약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기는 이 그룹에 속하는 몇몇 소수자들은 그것에 이어지는 또다른 혁명을 꿈꾸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개 구식 마르크스주의 같은 저열한 이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미래가 없었다. 그것은 그 지독한 변종 괴물인 주체사상이 보여주듯 또다른 야만의 얼굴이었다.
지혜롭지 못했고 세계사를 꿰뚫는 식견을 갖추지 못했던 이들 세대에게 1987년 체제는 하나의 종착역이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더 나아가야 할 이상이 없었으므로 이들에게는 이제부터 적응해야 할 매커니즘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들 열심히 살았다. 아마도 착하게도 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느 단체에서 내걸었는지 모르는 열심히 살자, 착하게 살자에는 푯대가 없다. 푯대 없는 열심히 살자는 마키아벨리즘에 빠지기 쉽고, 푯대 없는 착하게 살자는 사람을 현재에 귀착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오히려 열심히 살아서도 안되었고 착하게 살아서도 안되었는지 모른다. 그 대신에 우리는 천천히, 사색하고,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적응하려 애쓰며, 살아남으려 애쓰며 살아왔다. 우리가 깨지 못한 구체제의 근본적 구조가 그렇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싸움을 배웠고, 서로 돕는 것보다 더 많이 경쟁을 배웠다.
모든 것이 수치로, 그리고 0과 1로 환원되어 추상화 되었다.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 세상은 더 물질주의적으로 급속히 개편되었다. 경제성장과 인간 경영과 인간 공학과 목표의 초과 달성이 미덕이 되고 인문학과 예술학은 루저들이 마지 못해 살아가는 영지가 된 듯했다.
우리 사회처럼 종교가 번성하는 곳도 없지만 바로 그 종교의 이름으로 무신론적인 물질 숭상이 이토록 심하게 거행되는 곳도 없다.
이 세대는 지금 드디어 마름들의 위상을 획득했다. 구각을 벗지 못한 체제를 떠받치는 중간 관리층으로서 그들이 한때 저항했던 악을 당연시하고 그것에 편승하여 더 높은 곳으로 비상하고자 한다. 비도덕적인 특권층의 악덕에 눈감고서라도 더 많은 기회를 타내고자 한다.
그러는 사이에 이 사회는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법을 잃어버리고, 공허를 화려하게 치장하는 화장술을 발전시켰다. 이것에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이가 드물다. 많은 이들이 머리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미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곧장 숫자로 환산되어 추상적으로 떠오를 뿐이다. 우리는 앞으로 소득 몇만 불 시대에 살게 될 것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들여다 보면 우리가 정말 결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가 어렴풋이, 아니, 명료하게 보인다.
우리는 삶을 실체로서 이해하는 법을, 타인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법을, 생명의 가치를 다른 무엇보다 먼저 생각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오늘의 이 슬픔을 우리 같이 나누어 져야 한다. 우리들의 죄를 서로 같이 가엾어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