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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엔 왜 나를 볼수 없을까”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4-25 02:01 게재일 2014-04-2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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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사탕들'  이영주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148쪽

이영주(40·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차가운 사탕들'(문학과지성사)은 존재의 비밀과 시 탄생의 비밀을 일치시키려는 낯선 언어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존재의 비밀이란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걸쳐 있는 존재의 현상학을 의미하는데, 이영주는 우선 탄생의 순간에 대한 비의를 이렇게 시로 옮긴다.

“태어나는 순간에는 왜 나를 볼 수 없을까/ 미래 밖에서 우리는 공을 굴린다.// 가장 아름다운 색깔은 안쪽에 숨겨져 있다./ 아픈 사람의 손바닥은 빨개// (중략)// 새벽을 지나 앞발로 공을 굴리는 고양이/ 태어나면서부터 날 수 있다면 우리는 다른 색깔을 가졌을지도 몰라// 모호한 시작 때문에 처음과 끝을 굴리는 우리는”(`둥글게 둥글게' 부분)

탄생의 순간을 기억하는 갓난아이가 없다는 점에서 산파술의 비밀은 타자만이 탄생의 순간을 기억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를 받은 산파마저도 피조물이긴 마찬가지여서 산파술의 비밀은 산파 역시 알지 못한다. 한 존재의 시작에 칠해진 가장 아름다운 색은 존재 그 자체라고 할 `공'의 안쪽에 칠해져 있지만 우리는 한번도 그 색을 보지 못한 채 공을 굴리고 있을 뿐이라는 자괴감이 이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죽음은? “오늘은 이 잠이 마지막입니다. 차가운 돌 위를 떠나 안으로 들어갈 날을 하루 앞두고 있네요. 돌을 깨고 돌가루를 먹는 석공들은 느낌으로 안다고 합니다. 병자의 마음을… (중략) 돌을 깨고 나면 우리의 생태는 죽은 살덩이로 남아 있습니다. 미끈한 돌이 완성되고 벼랑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애인을 만나려고.”(`석공들의 뜰' 부분)

이 시의 화자는 돌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임종 직전의 사람으로, 여기서 돌이란 차갑게 굳어져가는 그의 몸을 형상화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이영주의 시는 이렇듯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모호한 현상들을 포착하고 있는 한편, 그러한 현상을 시의 탄생 과정과 일치시키려는 개성적인 해석학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해석학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야유회'일 것이다. “노인들은 서로를 죽은 자로 대할 수 있기 때문에 등을 쓸어준다. 솟아오른 등뼈가 조금씩 부드러워지도록. 나는 어떤 뼈의 성분에 숨어 있었나.// 머무는 곳으로부터 추방당하면서 침묵은 언어보다 크고 뜨겁게.// 태어난 곳에서 가장 먼 곳. 폐기물 냄새가 모여드는 곳.”(`야유회' 부분)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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