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컴퓨터·휴대폰 피로사회

등록일 2014-04-17 02:01 게재일 2014-04-17 19면
스크랩버튼

출근해서 무슨 일이든 하려면 컴퓨터를 켜야 한다. 인터넷을 연결해야 한다. 누구나 꼭 먼저 접속해야 하는 사이트가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의 홈페이지일 것이다. 접속에는 로그인이 필요하다. 로그인 작업은 어렵다. 아이디를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또 입력해야 한다. 이 작업은 간단치 않다. 아이디는 대개 영문이기 때문에 영어 자판을 제대로 누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비밀번호는 더 어렵다. 영문과 숫자를 조합해 놓았기 때문에 자판 두드리는데 더 신경 써야 한다. 이제 됐다. 하지만 꼭 읽어야 할 메일이 들어와 있는지 봐야 한다. 메일에 안 읽은 편지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다. 오늘은 1179개의 안 읽은 메일이 있다. 자기에게 할당된 저장 용량이 곧 바닥이 날 것 같다. 지난 번에도 98%를 사용중이라고 했다. 메일들 지우는데 진땀을 흘렸다.

나는 옛날 실학자 이름을 딴 그 연구소 메일을 받겠다고 한 적이 없다. 나는 그 정치색 강한 목사에게 아침마다 편지를 받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다. 나는 또 그 금연클리닉 두번째 프로그램이 시행된다는 편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서른일곱 살 때쯤 담배를 끊었다. 왜 인천 문화를 위해 일하는 곳에서 내게 소식지를 보내겠다고 하는 걸까? 혹시 3주 전에 인천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신도 가는 배를 탄 게 알려진 것일까? 출판사들에서도 고맙게도 책의 존재를 알려주는 광고를 보내줬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이 필요 없다.

무슨 교육재단에서도 나를 잊지 않았다. 그곳에서 내가 필요한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필요한 꼭 그만큼의 이유 때문이다.

이메일을 정리한게 얼마나 됐나? 석 달은 된 것 같다. 오늘은 이 1천개가 넘는 메일을 다 선별해서 쓰레기통에 집어넣을 여유가 없다. 100개나 200개쯤이라도 지워서 여유공간을 마련해야겠다.

메일 정리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온다. 핸드폰을 들어 문자 보낸 번호를 본다. 모르는 핸드폰 번호다. 켜보고 싶지 않지만 하는 수 없이 열어본다. 꼭 필요한 문자인지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숨이 난다. 대리운전 광고 문자인 때문이다. 오늘은 술 마실 필요가 없건만. 내가 운전면허를 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또 술 마시고 운전은 안 하기로, 선량한 시민 되기로 생각한 걸 어떻게 알았는지. 하지만 내게 문자를 보내는 알 수 없는 곳에서는 내가 선량하지 않다는 걸 안다.

최근에는 무슨 포커를 하라는 문자가 핸드폰 번호를 달리 해서 연달아 여섯 개 인가가 왔다. 나는 아주 선량하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무료하지는 않은데 말이다. 대출 이자 싸다고 하는 문자도 한두 번 아니었고. 휴. 이것들을 언제 다 지울 수 있을까. 어제 이 문자들을 200개쯤 지웠지만 아직도 휴대폰에는 500여개의 처리해야 할 문자들이 있다.

고마운 것도 분명 있다. 오늘 우편물이 배달될 거라는 임상복님의 문자. 오늘 그 우편물을 밤에 경비실에서 찾아와야겠다.

하지만. 이 분은 이 모든 우편물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입력을 해아 했을까? 전산으로 자동처리되는 일이기를 바랄 뿐이다.

자동차의 모드 액츄에이터인가를 고치러 서비스센터에 갔었다. 정비기사 분이 차문을 열고 눕다시피해서 고장 난 부품을 갈아주었다. 하지만 그분에게 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컴퓨터에 입력을 해야 했다.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다. 필시 내 이름, 그날 날짜, 교환한 부품 종류와 수량, 가격 등을 꼼꼼하게 기입해야 했을 것이다. 또 그 관리 프로그램에 자신의 실적을 남기기 위해 로그인을 해두었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아침부터 벌써 지쳐 버렸다. 커피를 마시지 않고는 잔뜩 안개가 낀 이 머리 상태를 되돌릴 수 없을 것 같다.

방민호칼럼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