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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時代 젊은 세대의 초상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4-11 08:48 게재일 2014-04-11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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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지음 창비 펴냄, 279쪽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래 꾸준하고 성실하게 작품활동을 이어온 김금희의 첫 소설집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창비)이 출간됐다.

등단 이후 5년,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차분히 가다듬어온 열편의 소설이 묶였다. 막막한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공간을 찾아나가는 우리 시대 젊은 세대의 초상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가운데, 주변을 돌아보는 속 깊고 섬세한 시선이 풍성한 이야기의 결 안에서 따뜻하게 빛난다.

김금희의 소설은 어느덧 우리 시대의 보편이 돼버린 막막한 현실을 정직하게 응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가 자취를 감추었거나(`너의 도큐먼트`), 허울뿐인 베트남 참전 경험만 믿고 허황하게 사업을 벌이다 IMF에 떠밀려 좌초되거나(`장글숲을 헤쳐서 가면`), 일평생을 몸 바쳐 일했지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에서 밀려나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아이들`). 그다음 세대에게도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아, 소설의 주인공들은 갓 상경해 입사한 회사를 수습기간도 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거나(`우리 집에 왜 왔니`), 다단계 회사에 들어가 몇달씩 헛된 꿈을 쫓기도 하고(`아이들`), 서울의 변두리를 전전하다 회사 사무실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거나(`릴리`), 고단한 일상을 견디며 철거 중인 오래된 판자촌을 지키고 있다(`집으로 돌아오는 밤`).

개인의 삶을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김금희의 소설이 돋보이는 점은 자신이 처한 곤경에 유난 떨지 않고 손쉽게 환상에 기대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어정쩡하게 타협하지도 않는 차분한 균형감각이다. `너의 도큐먼트`의 주인공은 어머니의 제안에 따라 집 나간 아버지를 찾으러 지도를 들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데, 거리거리를 계획 없이 어슬렁거리는 그 하릴없는 여정의 사이에, 옛 친구의 죽음을 전해듣고 해묵은 부채감에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가 나란히 놓인다.

이 탐색은 결국 아버지의 현재와 친구의 죽음 양쪽 모두와 지금의 자신 사이에 가로놓인 현실적인 거리감을 확인하는 데서 그치게 되어 있지만, 소설은 그 공백의 자리로부터 자신만의 길을 어렴풋하게 열어나가는 주인공의 성장을 담담하게 그려 보인다.

그의 여러 소설들이 세대를 품 넓게 아우르는 것도 그런 미덕 때문이다. `아이들`은 부산과 인천의 목재공장에서 평생을 일해온 아버지의 신산한 생애와, 변두리 아파트에 집을 마련해 이사하던 날 정육점에서 구한 황소 코뚜레에 중산층의 소망을 의탁했던 어머니의 삶을 이해해가는 이야기이다.

▲ 소설가 김금희

아버지와 어머니가 힘겹게 이루어낸 변두리의 삶을 벗어나리라는 꿈을 꾸며 방황했던 주인공은 이제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의 곁에서 언젠가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나무의 부력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 아슬아슬한 생의 부력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시간을 이어주고 있음을 깨달아간다.

다양하고 개성 있는 인물들이 품고 있는 다채로운 이야기와 그들의 사연을 요령 있게 갈무리해내는 솜씨 역시 김금희의 소설을 특징짓는 미덕이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은 재수에 실패한데다 덜컥 임신까지 해버린 스물한살 주인공의 막막한 상황이 이야기의 중심이지만, 그 고민 못지않게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지닌 저마다의 이야기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특유의 풍성한 서사의 결을 만들어낸다.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의 곤경을 차분히 응시하면서 주변의 이들에게 따뜻하고 애틋한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일, 그리고 조심스레 고개를 기울여야 알아챌 수 있는 희미한 기척으로 그들과의 거리를 가늠하는 일. 그것이 김금희의 소설이 세상에 응답하는 우직하고 정직한 방식이다. 담담한 듯 애틋한, 건강한 그 시선이 더욱더 깊고 넓어지면서 만들어갈 아름다운 소설의 결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도 좋겠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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