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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윤희정기자
등록일 2014-03-28 02:01 게재일 2014-03-28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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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할 때와 죽을 때`  황학주 지음  창비 펴냄, 105쪽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래 독특한 어법과 돌발적인 비유로 한국 서정시에 다채로움을 더한 개성적인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황학주 시인의 열번째 시집 `사랑할 때와 죽을 때`(창비)가 출간됐다.

`某月某日의 별자리`(지혜 2012) 이후 2년 만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사랑과 슬픔과 고독이 뒤섞인 고즈넉한 서정의 풍경 속에 감성적이고 “차가운 육감의 세계”(이근화, 추천사)를 펼쳐 보인다.

더욱 원숙해진 시선으로 생(生)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직 우리 시가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날것의 체험”(송재학, 발문)을 섬세하고 정갈한 언어로 갈무리한 시편들이 둔중한 울림 속에서 서늘한 감동을 자아낸다.

“한사람의 젖어가는 눈동자를/한사람이 어떻게 떠올리는지 모르지만/사람들은 사랑한다고 말한다/그러나 과거를 잊지 말자/파탄이 몸을 준다면 받을 수 있겠니//숨 가쁘게 사랑한 적은 있으나/사랑의 시는 써본 적 없고/사랑에 쫓겨 진눈깨비를 열고/얼음 결정 속으로 뛰어내린 적 없으니/날마다 알뿌리처럼 둥글게 부푸는 사랑을 위해/지옥에 끌려간 적은 더욱 없지//예쁘기만 한 청첩이여/목이 떨어지는 동백꽃처럼 좀 아프면 어때/아픔은 피투성이 우리가 두려울 텐데”(`얼어붙은 시` 부분)

`사랑과 상처의 시인`으로 불려온 황학주 시인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가장 소중한 삶의 방식으로 여긴다. “온몸으로 서로에게 저물어가”(`진학`)는 사랑은 타자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하여 “아직 한번도 못 본/한사람을 위해 유랑하고 있는/시”(`백야`)는 “빨랫방망이로 두드려놓은/맑은 물”(`우물터 돌`)처럼 순결한 생의 바탕으로서 시인의 순정한 사랑과 다르지 않다.

“숨도 쉴 수 없는/행복하게 외로웠던 순간들”(`그렇게 협소한 세상이 한사람에게 있었다`)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시인은 사랑의 불가해한 현상 속에서 삶의 근원과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어느날 야윈 눈송이 날리고/그 눈송이에 밀리며 오래 걷다//눈송이마다 노란 무 싹처럼 돋은 외로움으로/주근깨 많은 별들이 생겨나/안으로 별빛 오므린 젖꼭지를 가만히 물고 있다//어둠이 그린 환한 그림 위를 걸으며 돌아보면/눈이 내려 만삭이 되는 발자국들이 따라온다//두고 온 것이 없는 그곳을 향해 마냥 걸으며/나는 비로소 나와 멀어질 수 있을 것 같다/너에게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사랑은 그렇게 걸어 사랑에서 깨어나고/눈송이에 섞여서 날아온 빛 꺼지다, 켜지다”(`겨울 여행자`전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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